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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봉인된 명령(Sealed Orders) / 정성완

정성완(레오나르도)시인
입력일 2019-07-30 수정일 2019-07-30 발행일 2019-08-04 제 3156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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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무엇을 위해 사는가」(원제 Healing the Purpose of Your Life)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돌이켜 보면서 주말편지 한 장을 띄웁니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 평상시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잘 모르고 산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온 세상이 변할 것이고 푸른 바다가 조용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하는 일 때문에 온 세상이,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각자 자신이 존재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언급된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에게 ‘봉인된 명령’을 받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 봉인된 명령은 군대에서처럼 복종만 하는 명령이라거나 완수해야만 하는 어떤 과제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의 고유한 사고와 행동 방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봉인된 명령에 속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는 하느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음과 행동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작금의 교회 현실은 주님께서 바라는 것과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과 평등과 나눔이 있는 평화의 땅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길을 잘 따르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살인하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생명 살인, 인격 살인, 인권 살인이라는 말을 하지만, 저는 여기에 ‘신앙 살인’이라는 말을 하나 더 붙이고 싶습니다. 일상생활에 지친 심신에 위안을 찾고자 하는 소망, 하느님 품 안에서 평안한 안식을 얻고자 하는 소망을 방해하고 끊는 것은 엄중한 신앙 살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떻게 하면 이분들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신자들이 반목하도록 만들지 않고, 신자와 사제 사이를 이간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를 사회 악평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교회의 평화를 깨고 불안을 조성해 냉담자를 양산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싫든 좋든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감싸주며 협조해야만 주님을 향해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가 갈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랑에는 한계도, 경계도 없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봉인된 명령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본분에 벗어나는 일들을 하지 않기 위해 ‘신기독야’(愼其獨也·혼자 있을 때도 몸가짐과 언행을 조심하다)하고, 예수님의 봉인된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지금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 분이라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자식은 부모 곁을 떠나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던 초심을 버리지 말고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입니다. 아무도 그 가지를 마음대로 자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줄기에 붙어살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이고, 주님의 봉인된 명령입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성완(레오나르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