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평화의 길, 교회의 역할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7-30 수정일 2019-07-30 발행일 2019-08-04 제 3156호 1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우리에 대한 일본의 강압적 압박 행태가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일본은 주요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로부터 시작해 안보 영역에서 우방국 명단이라는 ‘백색국가 명단’(white list)에서 한국을 제외하고자 한다. 그리고 2020년 도쿄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했다고 한다. 흔히 일본의 경제전쟁이라고 하지만 경제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제와 국방·외교 등의 분야에서까지 우리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항의로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일본 보이콧’은 이제 들불처럼 번져 국민운동처럼 승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올해 3월 일본 ‘가톨릭정의와평화협의회’ 회장인 가쓰야 다이지 주교는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서 “올해 3월 1일은 우리 일본 천주교회가 역사를 직시하고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평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다시 물어야 하는 날”이라고 하면서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의 근원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침략정책이라는 역사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 일본의 가해 역사를 직시하면서, 문화·종교 등 분야에서 시민을 통한 다양한 교류를 돈독히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원하자”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일본교회와 함께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일을 함께 모색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올해 11월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본 방문이 예정돼 있다. 한국과 일본교회가 함께 준비해 교황이 일본과 한국, 나아가 가능하다면 북한까지 방문하는 동아시아 평화 순방을 기획해 볼 수는 없을까? 현실적으로 일정이 촉박해 쉽지 않다면, 일본 방문 후에 판문점에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미사를 교황이 주례하는 것만이라도 제안해 볼 수는 없을까?

현재 일본의 경제전쟁은 미중 패권 경쟁 하에 진행되는 동북아 국제질서의 전환 움직임에 대한 일본식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질서 전환 움직임은 자칫하면 군사적 충돌로 발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고 평화의 물꼬를 트는 일에 우리 교회가 일본교회와 함께 나서게 된다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국가의 경계를 넘어 그리스도의 평화를 구현하는 데에 앞장서게 되는 것이다.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 2,4)는 말씀을 따르는 일에 한국교회, 일본교회의 구분이 있을 수 없지 않겠는가?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