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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단상] 모든 순간이 찬란히 눈부셨습니다 / 이소연

이소연(체칠리아) 명예기자
입력일 2019-07-23 수정일 2019-07-23 발행일 2019-07-28 제 315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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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인의 아내다. 하느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셔서, 내 짝으로 보내주신 남자는 대한민국 육군 장교. 사실 결혼을 하고 그와의 생활들을 시작하기 전까지, 군인의 아내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아니, 알고 있다고 해도 머리로만 알고 있었다. 익숙해 질만 하면 해야 하는 이사는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늘 낯선 곳에 던져진 그 느낌은 그 어떤 형용적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이 커갔고, 나의 분주함과 애달픔을 아시는 분께서 아이들 곁에 늘 머물러 주셨다. 잦은 환경의 변화에도 아이들은 그래서 무탈하게 자랐다.

내 머리보다 훌쩍 올라간 아들과 통통 뛰는 딸을 데리고 실로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나섰다. 커다란 가방을 식구 수만큼 들고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아이들이 자랐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끔, 손이 허전할 정도로 큰 가방들을 번쩍번쩍 들어주던 아들의 모습에, 불혹도 어느새 중반을 지나가고 있는 신랑은 대견함과 함께 세월의 무상함을 표정으로 보여주었다. 더 이상 안고 걷지 않아도, 제 가방 거뜬히 메고 끌고 걷는 딸내미의 모습에서도 시간의 흐름을 보았다.

5박6일의 시간을 어찌 이 몇 줄의 글로 다 담을 수 있을까!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우도 자전거 라이딩. 곳곳에 부서지는 파도를 뽐내는 예쁜 바다가 있고, 볕보다 밝게 웃는 해녀들이 있고, 라이딩하는 방문객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는 카페들도 있었다. 뭍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낮은 돌담들이 늘어선 어촌 마을도 있고, 살랑이는 바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있었다. 허둥대는 엄마가 넘어질까 저만치 달리다 돌아와 살펴주는, 훌쩍 자란 아들이 있었고, 걱정스러워 못 달리는 아빠에게 큰소리며 치며 씩씩하게 달리는 딸내미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앞에서 가는 어깨 넓은 신랑이 있었고, 그 끝에 그 뒷모습을 넘치는 기쁨으로 바라보는, 나, 도 있었다. 모든 순간이 찬란하게 눈부셨다. ‘행복’은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고 한다. ‘행복해’보다는 ‘행복했다’라고. 그러나 그날, 뒤따라가며 바라본 신랑과 아이들의 뒷모습, 나는 매 순간 ‘무한히 행복해’라고 되뇌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가 저절로 속삭여졌다. ‘행복’이 ‘지금’임을 알아챌 수 있게 해주셔서….

십오 년 전에, 나는 군인의 아내가 되었다. ‘하느님이 맺으셨으니, 사람의 힘으로는 이들을 끊을 수 없다’라는 약속으로 함께 걷게 된 사람이 있다. 특별히 하느님께서 허락해주셨을 거라 믿었다. 삶이야, 늘 우여곡절의 연속이니, 당신께서 준비해주시는 것들을 기꺼이 살아내겠노라, 나를 다지며 지내는 시간들도 있었다. 낯선 곳에서 두 아이들을 올곧이 혼자의 힘으로 키우며, 늘 이 아이들과 함께 걸어주시라, 이 아이들의 모든 순간에 함께 머물러 주시라, 당신의 사랑으로만 이 아이들이 자라니, 그 품 안에 품어주시라 기도도 했다. 만만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특별히 마련해 주신 것이라 믿었다. 아직, 십오 년의 삶 밖에 살아내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을 우여곡절 속에서 살아내야겠지만, 당신께서 준비해주신 모든 것들이 모든 순간, 내 삶 속에서 찬란하게 눈부실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감사합니다. 눈부시게 찬란한 이, 모든 순간을….

이소연(체칠리아)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