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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내 이웃은 누구인가?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신부rn(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9-07-23 수정일 2019-07-23 발행일 2019-07-28 제 315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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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원로 신부님이 찾아오셨다. 동남아와 남미 쪽을 다니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는데 후원해주기를 요청하셨다. 연세가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해외선교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후배로서 매우 존경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은퇴하기 전부터 해외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헌신해왔던 그분은 철사로 십자가를 직접 만드는 기술을 익혀 성물로 포장해서 판매함으로써 후원금을 모금한다는 것이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데 남은 생을 바치시는 그분께 마음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하고 질문한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라고 말씀하신다. 이웃은 이스라엘 민족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면서, 동시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루카 10,37)이기도 하다. 이웃은 ‘지리적인 거리’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전 지구적인 거리’로 가까이하는 사람이다. 비유 이야기에 나오는 사제나 레위인은 하느님 가까이에서 봉사하는 사람이지만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둘 다 똑같이 “길 반대쪽으로”(루카 10,31) 지나가 버린다. 반면에 유다인들에게 이방인과 동일하게 취급당하며 멸시당했던 사마리아인은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루카 10,33)이 들어 그를 치유하고 돌보아주어 생명을 구해준다. 결과적으로, 사제나 레위인은 외적으로 하느님과 가까운 종교지도자로 처세하지만 고통받는 이에게 멀리 있고, 사마리아인은 외적으로 하느님과 멀리 있는 존재이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이웃이 되어준다. 이제 이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가까이 있는 자’다. 바로 옆에 있든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 있든 지리적인 거리에 상관없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함께 있어주는 자가 진정한 이웃이다.

필자는 일 년에 두 번 청년 해외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남미나 아프리카까지 손이 미치지는 못하지만 동남아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여름, 겨울로 실시하고 있다. 참가한 청년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인생의 많은 경험을 쌓게 되고, 국제적 감각을 익히며, 봉사정신을 배운다. 물론 청년 간의 만남과 교류로 서로 친교를 나누며 청년사목을 활성화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돈을 써가며 외국에 나가야 하느냐?”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아마도 이태석 신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신부님도 이런 질문을 받은 모양이다. “그곳에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자비를 베풀 때 ‘가까이하는 사람’인 이웃이 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 즉위 이후 처음 행한 외부 공식방문지로 람페두사 난민 수용소였을 만큼 난민 문제를 최우선 관심사 중 하나로 챙겨왔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세태를 비판하며 난민에게 관심을 가져둘 것을 호소하였다. 그로부터 꼭 6년이 지난 올해 그분은 난민과 이민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면서 난민들은 인간이며 이들을 단순히 사회적인 이슈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중적인 의미에서 난민들은 최우선의 인간이며 그들은 세계화된 현대 사회에서 거부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상징입니다.” 교황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환대임을 항상 주지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오셨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관심과 환대를 보여주는 이 시대의 착한 사마리아인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난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도를 넘어 심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면서 인간관계는 분열되고 점점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는 위험사회로 치닫고 있다. 강도를 만나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20세기 실존 철학자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표현이 이 시대를 대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과 평생을 함께 한 피에르 신부의 다음과 같은 말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 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등을 돌리는 자보다는 그 고통을 함께 나누기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한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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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신부rn(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