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성서해설] <180> 지혜서(1) / 이정순 수녀

이정순<修女 ㆍ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입력일 2019-07-10 수정일 2019-07-10 발행일 1988-01-31 제 159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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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시대로부터 성서로 애용
저자이름은 밝혀지지 않아
구약중 마지막에 씌여진 책
1,개요

1) 명칭,원본과 경전성

지혜서의 원본은 그리이스어로 쓰여졌고「솔로몬의 지혜」라는 제목을 달고있다. 그러나 원본은 전해오지 않고, 4 ㆍ 5세기경에 개서체로 쓴 바티칸, 시나이, 알렉산드리아, 에프렘 사본과 후대의 소문자 초서체 사본이 많이 남아있다. 불가타역은 이책을 단순히「지혜서」러 명명하였다. 사도시대부터 성서로 애용되었고 일찍부터 제2경전으로 선언된 이 책을 성 아우구스티노는「그리스도교적 지혜서」라 불렀다.

유다교는 이 책을 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야훼의 영감은 에즈라 시대에 끝났다고 보며 히브리어 이외의 언어로 쓴 것과 팔레스티나 밖에서 쓰여진 것들을 성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신교도 이를 따르지만 지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2) 저자,집필연대화 장소

지혜서의 저자 이름은 밝혀 지지 않고있다. 구약성서 중 맨 마지막에 쓰여진 이책의 6~9장은 솔로몬이 직접 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는 다른 지혜문학서에서 본 바와 같이 그의 이름을 빌렸을 뿐이다. 저자는 그리이스 철학에 상당한 지식을 갖춘 유다인으로 기원전 100~15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이스어를 사용하는 유다인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3) 집필 목적

끊이없이 강대국에 예속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야 했던 유다인들은 마케베오 형제들의 항쟁과 지혜교사들의 꾸준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리이스 문학의 영향을 면할수 없었다. 더우기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주한 유다인 일부는 그리이스의 쾌락주의에 빠졌고 이교정부 요직에 등용되어 동족의 상처를 가중시켰다.그런상황에서 처자는 동포를 위로하고 용기를 복돋우기 위해 자신의 성서지식과 발전한 그리이스 문화를 배경으로 유다의 전통적 가르침에 묵시적 요소를 곁들여 지혜문학을 더욱 발전 시켰다.

저자는 그리이스 문화를 부정하지 않고 고전 그리이스 철학과 당시 성황을 이룬 스토아 철학사상을 어느정도 받아들이면서 유다교의 우위를 드러냄으로써 야훼 신앙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하였다.

왕에 대해 언급이 많은 것은 저자가 교양있는 독자층을 전제로 하고, 부차적으로 우상을 섬기는 그리이스인의 개종까지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4) 문학유형

저자는 묵상유형 안에 훈계를 담아 성서의 전통을 독특한 방법으로 살리는 동시에 그리이스 문학, 철학의 어휘 뿐만아니라 문한(文翰)의 형식도 채택하고 있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팔레스티나에서 에집트로, 유다교에서 헬레니즘의 분위기로 옮겨가면서도 여전히 시나고가안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끔한다.

1~9장까지는 사상과 문체를 성서에서 빌려 지혜문학 유형에 배치함으로써 시선(詩選)에 의해 유다의 지혜

를 드러낸다. 물론 그리이스 수사법인 연쇄식(6,17)과 에집트에서 성황을이룬「이시스찬가」를 기억나게하여(8, 2~18) 그리이스 사상이 제공할수 있는 어떤 시도도 받아들이며서도 전적으로 유다교의 우위성을 유지한다. 10장으로책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잘 연결하고 11장에서는 아테네의 변론가이래 유서 깊은 그리이스의 슌크리시스 문학형식도 사용하고 있다. 10~12, 16~19장은 학가다 미드라쉬이다. 출애급사건에 대한 옛성서 이야기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자유로이 조정하며 거기에 새활기를 띄우기위해 보태고 빼고 과장하여 성서에 주석을 붙이고 있다. 13~15장은 삽입구적이며 우상에 대한 비꼼, 엉뚱함과 풍자의 말투로 헬레니즘의 다신교를 무력하게 만드는 효과를 내고있다.

문학유형의 다양성과 광범위한 언어는 지혜서의 통일성과 단일 저자설에 대해 논란의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대부분 학자들은 저자가 오랜 세월을 두고 내용을 쓰고 책의 선후를 조정했을 것이라는데에 의견을 모으고있다.

이정순<修女 ㆍ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