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27. 공익(公益)과 생명의 상징인 농촌 (「간추린 사회교리」 299항)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입력일 2019-07-02 수정일 2019-07-02 발행일 2019-07-07 제 315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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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은 생명의 장… 지속가능한 개발정책 필요
휴식과 충전의 장 묘사되지만 심각한 불평등으로 고통 심화
농업 공익적 가치 깨닫게 하고 생태적 회심으로 인식 바뀌어야

마리아: 신부님, 저번에 농활을 갔다 왔는데, 본당 청년들이 다들 너무 소중한 체험을 해서 좋았다고 합니다.

이 신부: 오, 그랬군요, 마리아!

마리아: 그런데 시골에 계신 분들이 다들 연세도 많으시고 어렵게 사시더라고요. 예능프로 보면 농촌 생활이 힐링하고 쉬는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이 신부: 맞아요, 우리 나라는 농어촌 빈곤문제가 심각합니다.

마리아: 저도 농촌에 계시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관심을 많이 가져야겠어요.

■ 농가의 현주소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농수산업은 국가 근간산업으로 자리해 왔습니다. 시장개방,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농업은 연평균 2.8%의 꾸준한 성장과 노동생산성 향상 등을 이뤘고 2015년 한국의 농업과학기술은 세계 5위의 높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바이오농업과 유전자기술 등 기술집약 농업은 더욱 발전해 갈 것이며, 스마트농업단지 조성을 통해 농업은 활력을 찾을 것입니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뉴농활 프로젝트’, ‘도농협동 국민운동’, ‘도농 간 업무협약’ 등 도농개발사업도 활발히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농가의 현재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많은 농가는 실질소득의 감소, 소득격차의 확산과 불평등, 빈곤 문제를 겪어 왔습니다. 지난 2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국제농업개발기금 관리이사회 회의 개막식 연설에서 세계적으로 농촌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영양실조, 심각한 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농어촌이 생명의 장이라는 인식 변화와 함께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하며 통합적인 농촌개발정책이 필요하다. 2017년 7월 원주교구 대안리 공소 밭에서 생명 농산물을 가꾸고 있는 농민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불평등 심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과 2016년 사이 국내 농가의 상하위 20% 평균소득 차이는 9.6배에서 11.3배로 증가했습니다. 도시가 5.7배인 것에 비하면 매우 큰 차이입니다. 주된 이유는 고령화와 영세농가의 경쟁력 하락, 소농사회 붕괴입니다. 도시보다 고령화율이 3배 가까이 높은 농어촌은 60대 농가의 72%, 70대 농가의 97%가 생계비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낮은 의료접근성, 국가 기반시설의 부재 등 농어촌의 현실은 매우 열악합니다.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휴식과 충전의 장소로 농촌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송물은 농가의 실질적인 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또 최근에는 도시농업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도시 등지에서 여가, 교육, 체험을 목적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데 실제로 도시농업인구가 지난 10년 새 12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정부는 도시농업 인구를 2022년까지 약 400만 명으로 늘린다고 합니다. 도시농업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농촌이 여전히 배제된다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현실에 대해 우리가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입니다.

■ 농촌에 대한 진정한 관심

노벨상 수상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후진국이 공업발전을 통해 중진국까지 발전할 수 있지만 튼튼한 농업 없이 선진국이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산업의 균형발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다 더 중요한 맥락은 농업이 갖는 공익성입니다. 사실 농업은 단순히 식량공급과 경제적 가치 창출이라는 좁은 의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농업은 식량안보와도 관련되며, 자연환경과 녹지, 생태계 및 수자원을 보존하고, 국민들에게 쾌적한 자연과 생명체험의 장을 제공합니다. 농업은 국가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공익적 가치의 총체이며 생명과 삶의 문제라는 본질적 가치입니다.

우리는 농어촌이 생명의 장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처럼 도시 중심의 발전은 발전이 아닙니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하며 통합적인 농촌개발정책이 필요합니다. 위정자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의 관심과 생태적 회심, 농업은 생명이라는 우리의 인식 변화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여러 나라의 경제 체계에서 농업이 담당해 왔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역할의 중요성, 점점 더 세계화되어 가는 경제 상황에서 해결되어야 할 여러 가지 문제점들, 그리고 자연환경 보호의 중요성 증대를 고려할 때, 농업 노동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299항)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