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할머니의 유모차

김동만(마티아ㆍ전주교구 임실본당 관촌공소)
입력일 2019-07-02 수정일 2019-07-02 발행일 2019-07-07 제 315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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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공소에 가 보면, 지붕 위에 십자가, 그 앞에는 성모님이 서 계신다. 입구에 들어서면 녹슨 못이 지탱하는 ‘공소’라는 문패가 아슬아슬 걸려있다. 제철의 붉은 장미꽃 몇 송이가 먼지를 이고 계시는 성모님과 조화를 이룬다. 수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이곳 공소에 서려있다. 옛날에는 종소리도 아름다웠는데…. 우뚝 선 종탑에는 붉은 녹이 서려있다. 종은 벙어리가 되었고 종줄은 끊어진 채로 매달려 있다.

오늘은 신부님이 공소에 오시는 날, 성당 마당에는 유모차 몇 대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안젤라가 늦었구만.” 90도로 고개 숙인 허리, 겨우 얼굴만 드신 채로 서로 반가워한다. 그중에는 자전거도 있고, 전기로 충전하여 타는 전동차를 타고 오신 자매님도 있다.

누군가는 역사를 만들고, 세월은 흘러가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계속되어 왔기에 이곳 공소 역시 여기에 있고 이 순간에도 역사를 만들고 있다. 조상 없는 후손, 뿌리 없는 나무는 자랄 수 없다. 시골의 공소들은 늙어간다. 신부님께서는 “두 명 혹은 세 명만 미사에 참례한다 해도 주님은 계시기에 미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론하신다.

가톨릭신문에서 시골 공소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공소의 모습을 가꾸는 일은 그 자체로 역사이며 공소는 살아있는 증거물이다. 이곳 관촌공소 역시 여기에 있었고, 버텨온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주말이라 큰아들 내외가 손자를 데리고 와서 미사에 함께 참례하게 되었다. 손자들은 신부님 강론 중에도 아랑곳없이 성당을 휘젓고 다녔다. 신부님께서는 강론을 하시다 말고 웃으시고, 그런 신부님을 보며 신자들도 웃고 말았다. 모처럼 생동감 넘치는 미사였다고 신부님은 말씀하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이웃들은 손자를 둘러싸고는 호주머니에서 천원 이천원씩 쥐여주며 환한 미소들을 지으신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도시본당과 시골공소가 서로 결연을 맺어 한 달 아니면 두 달에 한 번이라도 도시 청소년들을 데리고 시골공소에서 노인들과 함께 미사를 드려보면 어떨까.

공소와 옛 것은 역사 속으로, 현대문명은 과학만을 쫓는다. 아직도 현실은 종교의 셈법을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시골공소의 십자가를 보며, 지난날 신자들로 북적이던 때를 떠올려 본다.

주님 뜻대로 하소서. 때 묻고 덜컹거리는 의자에 빛바랜 성당벽에 서 있는 십자고상, 뽀얀 먼지에 반사되는 십자가의 길 액자…. 그나마 남아있는 성물들 모두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었으면. 후손에게 신앙을 심어준 이곳 공소여, 영원하라.

김동만(마티아ㆍ전주교구 임실본당 관촌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