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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막말 1이 또 막말 2를 낳으니 / 김지영

김지영(이냐시오)rn전 경향신문 편집인
입력일 2019-07-02 수정일 2019-07-02 발행일 2019-07-07 제 315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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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⑭
요즘 정치인들의 막말이 부쩍 많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로부터 ‘비생산적’이라는 지탄을 받아온 여야 정치권은 처리해야 할 민생현안을 미뤄둔 채 막말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막말 1이 막말 2를 낳고, 막말 2가 또 막말 3을 낳는 ‘막말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있다.

막말이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또는 속되게 하는 말’이다. 정치란 원래 ‘말’로 하는 일, 말로써 세상을 죽이고 말로써 세상을 살리는지라 유사 이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막말이 떠도는 것 또한 필연적이다.

그렇더라도 정치인들이 꼭 막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그들의 머릿속에 든 저급한 생각이 말로 바뀌어 그대로 입으로 나오는 것이다. 생각은 말의 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정치인들이 실수로 한 말이 급기야 ‘막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 같은 실언 역시 저급한 생각을 자제하지 못해 나온 것이다.

둘째는, 의도적으로 막말을 한다. 무릇 오늘날의 대중 정치인들은 대중의 뇌리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게 우선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인기도’(지지도)와 ‘인지도’는 분명히 성격이 다르지만, ‘훌륭한 정치인’으로 인정받아 인기를 올리는 건 나중의 일. 우선 미디어(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게 중요하고 그러자면 자주 눈에 뜨이거나 ‘튀는 언행’을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의도적인 막말은 정당의 새 체제 출범 직후, 또는 총선이나 대선 등 중요한 행사를 앞둔 시기에 더 자주 나온다. 정치인 개인이나 정치세력의 인지도를 높일 뿐 아니라 지지층 결집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위의 두 가지 원인을 바탕으로 최근 인류 사회에 크게 불거지고 있는 문제 때문이다. 바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과 같은 소셜미디어(국내에서는 SNS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물론이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미디어들은 기본적으로 신문이나 방송 같은 전통 미디어에 비해 주관적 ‘맞춤형’의 성향이 강하다. 객관적 사실이나 진실보다는 ‘내 취향과 신념’이 중요한 것이다.

이 칼럼 란에서 기회 될 때마다 언급한 내용이지만, 인터넷 미디어 운영자들은 ‘클릭 수가 곧 수입액 규모’가 되는 특성상, 콘텐츠의 사실성보다는 이용자들의 눈길을 끄는 제목과 내용을 우선 게재한다. 또 디지털 미디어 이용자들은 갈수록 사실이나 진실보다는 ‘내 입맛에 맞는 것’을 찾고, 또 믿는 이른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증세에 빠지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오늘날을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주관적 맞춤형 성향은 여러 미디어 중에서도 유튜브가 가장 강한데, 지구촌의 이용자들은 갈수록 유튜브로 쏠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확증편향은 대표적인 부작용이 바로 가짜뉴스, 그리고 그 확대판인 혐오뉴스와 증오뉴스이다. 디지털 자본주의의 대표적 모델이라는 디지털 미디어는 무한한 창의성과 기술로 인류에게 신세계를 가져왔지만 그 표현주의의 이면에는 가짜뉴스나 증오·혐오 뉴스와 같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인종과 종교, 이념, 세대, 성적 차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디지털 표현주의의 부작용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많은 편가르기와 갈등, 분쟁, 폭력, 양극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치인의 막말도 그 맥락의 그늘에서 자연스럽게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것이다. 예부터 우리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비유를 써왔다. 그와 같은 취지로 말하자면 오늘날은 ‘사람은 디지털 미디어를 만들고 디지털 미디어는 사람을 만든다’고 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미디어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더 보완하고 조절하는 노력들도 따르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용자들에게 식별안목을 길러주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보편적 교육으로 자리를 잡아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사이에 일치하는 견해다. 그것은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본적 노력에 해당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필자는 우리 교회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거듭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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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냐시오)rn전 경향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