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학산책] 8 하인리히 볼의 소설 「아담, 너 어디가 있었나?」

곽복록ㆍ독일 뷔르츠부르크대 독문학박사ㆍ서강대 명예교수
입력일 2019-06-27 수정일 2019-06-27 발행일 1991-12-22 제 1785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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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비극ㆍ죄악성 고발…경종

72년 노벨상… “전후독일문학의 초고봉” 격찬
2차대전 참전경험이 토대…「고발문학」의 대표작
우리 말에는 한국사람만이 표현하는 독특한 말들이 있다. 그가운데서도「돌아가시다」라는 말은 모르긴 해도 세계 어느 민족에도 없는 표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공손하게 말할때 쓰는 이 표현에서 나는 그「돌아가는」곳을 자기 조상들이 간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두렵고 피할 수 없는 생명의 종말이다. 사람의 한뉘에서 겪어야 하는 마지막이자, 가장 두려운 경험을 가리켜 조상님네들이 간 곳으로 간다고 표현해 온 우리 조상들의 예지를 감탄하기 조차 한다.

허두의 사설을 접고 내가 소개해야할 하인리히 뵐과 그의 대표작중의 하나인「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로 애기를 돌리자.

하인리히 뵐은 1917년 12월 21일 독일 쾰른에서 빅토르 뵐의 여덟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뵐의 가계(家系)를 보면 그의 부친 쪽 조상들은 19세기 전만해도 영국 사람들이었다. 왕비를 여섯명이나 바꾼 것으로 유명한 영국왕 헨리 8세(1491~1547)가 그의 이혼을 문제삼은 가톨릭교회를 이탈하고 박해했을 때, 그 신앙하나를 밑천으로 독일로 건너온 영국인의 후예가 하인리히 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뵐은 나면서 부터 가톨릭교도일 수 밖에 없었고, 가톨릭교도로 살다 가톨릭교도로 죽기를 원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뵐은 영국에서 이민온 조상들이 차례로 대물림한 신앙의 열쇠를 손에 쥐고 출생하였고, 그 열쇠로 이승의 삶을 열어가다가 마침내는 그 열쇠만이 열수 있는 조상의 나라로「돌아간」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는 교회와 관련한 단체에 묶이지 않았다. 나치스와 교회의 관계를 알고 있는 세대인 뵐은 전후에도 가톨릭교회의 순응주의를 공격하는 입장에 일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본질적으로 가톨릭 신도이기를 포기하거나 신앙을 바꾼 일은 없었다.

그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만 참다운 위안을 얻은 사람이라고 술회하였고, 절망과 불완전성으로 부터 적극적인 삶의 가치를 알게하고 거듭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톨릭신앙이 인간에게 부여해 준다고 믿었었다. 그러면서도 뵐은 일생동안(1917~1985) 독일 정부나 가톨릭교회 편에서는 불편한 존재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아이러닉한 뵐의 신앙생활을 실감있게 감명할 수 있는 뵐의 작품이 있다. 그것은 1954년에 발표한 소설「보호자 없는 집」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그의 신앙과 문학의 관계가 어떤것인가를 단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문학평론가들은 지적한다. 즉 가톨릭신앙의 발판 위에 선도덕주의자(모랄리스트)만이 쓸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인리히 뵐의 대표작중의 하나는 1951년에 낸 장편소설「아담, 너는 어디 가 있었나?」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으로 전후 독일 문학 재건의 기수이던「그룹페 47」의 문학상을 받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세계 제2차대전 이후,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이른바 전쟁 소설 가운데서도 최고 걸작의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뵐이 2차대전때 독일 육군 보병으로 겪은 1939년부터 1945년에 걸친 각 전선 참전의 경험을 토대로 씌어진 작품이다. 소설의 구성은 파인할스라는 독일군 병사가 소설의 각 장(Chapter)에 따라 주역으로 또는 조역으로 바뀌면서 전개되는 9개의 단편 소설의 묶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인「아담, 너는 어디 가 있었나?」는 역시 가톨릭 문화철학자인 테오도르 헤커의「낮과 밤의 일기」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세계의 대참사는 많은 사람들의 변명에도 용이하게 이용물로 되어지고 있다. 하느님 앞에서 자기의 알리바이를 찾아 내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러하다. 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

『예, 저는 세계대전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소설은 2차대전도 막바지인 1944년과 그 다음해에 걸친 북부 발칸지방에서 전개된다. 남부와 동부전선에서는 독일군 수뇌부의 전략 과오로 수업이 많은 병사들이 무의미한 죽음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전투가 소강 상태로 들어서자, 독일군들은 지하저항 조직들이 폭파한 다리를 복구하기위해서 들어 왔고, 그 주변을 순찰하면서 단순한 작업과 작업 사이에 무료하기 짝이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독일군 병사들이 든 집의 주부인 수잔 부인은 의아하기만 해진다.

군인들은 잘 먹었고, 잘 잤으며, 돈도 넉넉했었다. 수잔 부인은 강제로 군대로 징집된 자기 남편도 자기로서는 알길이 없는 낯선 곳에서 저들처럼 빈둥빈둥 놀고 있을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전쟁이란 아마 남자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 먹기 위해서 치뤄지는 것이며, 그러길래 지금 자기가 보는 군인들이 생판 낯선 사람들인 것처럼 자기 남편도 자기가 알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간 것이 아닌가?

수잔부인이 자못 진지 하게생각하는 이 장면과 같은 묘사가 되풀이 되면서 소설「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는 전개된다.

그러면서 전쟁에 지쳐빠진 독일군의 장군으로부터, 헝가리의 작은 마을에서 병참근무를 하는 슈나이더 상사와 같은 직업군인의 모습도 섞어가면서 시종 어떤 형태로든 등장하는 건축관계 일을 하다 군대에 끌려온 파인할스병사가 끌려다니는 전쟁과 그 전쟁때문에 고난을 겪는 주민들의 애기도 펼쳐진다.

한편 전선은 이제 붓물 터지듯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운신을 할 수 없는 부상병들만이 동부와 남부전선에서 물밀듯 진격해 오는 연합군을 기다리고 있을뿐이었다. 파인할스도 부상병들의 집합장소인 한 여학교에 근무하다가 유태계 헝가리 여교사 일로나를 만나 서로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파인할스는 부상병 운반차인 적색가구운반차를 타고 떠나게 되고, 마침내 무너져내린 전선에 내팽개쳐진다.

한편 유태인 압송 차량으로 쓰인 녹색 가구운반차에 실린유태계 여교사 일로나는 간제수용소로 가게되어 그곳에서 죽임을 당한다.

한편 파인할스도 함께 건설작업을 도왔지만, 안전한 후퇴를 해 가설한 교량을 연합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서 제손으로 다시 폭파해버리는 끔찍한 장면을 눈 앞에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파인할스는 끈질기게 후퇴하였다. 무너져내린 서부전선에서 파인할스는 마침내 그의 출발지였던 낯익은 고향 땅에 발을 디뎌놓게 된 것이다.

제집으로 달려가는 파인할스는 공교롭게도 미군과 맞부딧치게 된다. 그래도 부모가 기다릴 제집 문방 앞까지간 파인할스는 미군이 쏜 마지막 총탄에 맞아 쓰러진다. 이때 그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본것은 자기 집 현관에 어머니가 항복의 표시로 내건 흰 식탁보였으며, 바로 전에 쏜 포탄이 그 식탁보를 쓰러뜨려 마지막 숨을 거두는 파인할스 위를 덮었고 그의 귀에는 다른 총탄을 맞고 지하실에서 비명을 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렸다.

소설의 장이 바뀔 때마다, 무대를 옮기는 이소설은 파국의 종말에 이르는 프로세스를 이동하는 전선을 빌려서 상연하는 무대 예술같은 느낌을 준다. 그 이동이 붕괴하는 전선이기 때문에 장을 거듭할수록 숙명적인 붕괴를 느끼게 되는데, 지리적인 이동을 빌려 비극을 심화하는 수법은 이 소설의 가장 특질적인 것으로 평가 되고 있다.

또한 군데군데 마치 프리즘렌즈로 같은 피사체(被寫體)를 중복해서 촬영하는 카메라의 기법같은 장면묘사도 특이하다. 가령 야전병원으로 쓴 헝가리의 여학교 복도에 걸린 졸업생들의 단체사진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해마다 다른 졸업사진들은 연대가 다를뿐 빳빳하고 흰 블라우스를 입은 여학생들은 웃고 있었으나, 어딘지 불행해 보였다고 한 부분은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거듭되는 반복 끝에 마침내 다다르는 비극의 종말을 통해서 뵐은 전쟁을 「무의미한 살인 의식」으로 독자의 머리 속에 강하게 인화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어런 점에서 뵐보다 앞선 작가인 생떽쥐베리의 다음과 같츤 귀절을 연상하게 한다.

『일찌기 나는 여러번 모험을 겪었다. 우편 항공로의 개설, 사하라 사막의 정복, 남아메리카비행 등. 그러나 전쟁은 진정한 모험이 아니라 모험의 대용품일뿐이다. 전쟁은 일종의 병이다. 티프스 같은 병이란 말이다.』끝으로 하인리히 뵐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언급을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70년 부터 1974년까지 국제P·E·N 회장이었고, 1971년 부터 1974년까지 국제 P·E·N클럽회장으로 있었다. 그리고 197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뵐은 명실 공히 전후 독일문학의 최고봉으로 동료작가뿐만 아니라 정치가들까지도 인정하였다.

그것은 그가 일생동안 불행한 소시민들의 편에 서서 권력과 맞섰고, 세계 각국에서 박해받는 동료작가들을 구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런 뵐이었기에 197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1974년에 소련에서 추방당한 솔체니친이 자유세계에 발을 디뎌놓은 첫날밤을 보낸 곳이 국제P·E·N회장이던 뵐의 집이었다.

하인리히 뵐은 1985년 68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문학작품, 특히「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는 전쟁소설이면서 전투장면의 묘사대신 전쟁자체의 본질적인 죄악성을 읽는 이마다 숙연히 생각해보게 하는 점에서는 특이할 뿐 아니라, 이른바 고발문학의 정도(正道)를 제시한 작품으로 인류의 문학사에 영원한 공적으로 남을 수있을 것이다.

그리고 뵐의 이런 창작태도의 심층에는 분명히 헨리 8세의 핍박에도 굴하지않고, 생활의 터전을 독일로 옮기면서 그들의 신앙을 지켜낸 뵐의 조상들의 가톨리시즘이 발판을 이루고 있음이 분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허두에 언급했듯이 하인리히 뵐은 그의 조상의 신앙을 받들고 끝내는 그곳으로 돌아간 훌륭한 후손이었다는 점도 우리는 아울러 기억하고 싶다.

◆「하인리히 뵐」의 문학연보

▲1947년 문단「데뷔」

▲49년「열차는 정확했다」출판

▲50년「방랑자여, 슈파로 오라」출판

▲51년「아담, 너는 어디가있었나」,「검은양들」을 발표하여「그룹47」문학상수상

▲53년「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출판.「독일비 평가」상 수상

▲54년「보호자없는 집」출판 헤센주 예술원 회원이됨

▲55년「지난해의 빵」출판 프랑스에서 매년 시상되는 취우수 작품상 수상

▲57년「아일랜드일기」출판

▲58년「무르케 박사의 침묵」출판

▲59년「아홉시반의 당구」출판. 부파탈시의 문화상 수상

▲60년 스위스의「살즈 베이요」상수상, 바이에른주 예술원회원 쾰른시의 문학상수상

▲62년「한줌의 흙」출판

▲63년「직무여행의 마지막」출판

▲67년「게오르그 뷔히너」문학상수상

▲68년 체코슬로바키아 작가동맹 초청으로 프라하를 방문했는데 마침 바르샤바조약국들의 체코침공을 보고 비밀방송과 신문을 통해체코의 자유를 호소함

▲70~72년 서독 펜클럽회장을 지냄

▲71~74년 국제펜클럽위원장을 지냠

▲71년「여인과 군상」출판

▲72년「노벨」문학상수상

▲74년 소련서 서방세계로 추방당한 솔체니친(1970년「노벨」문학상수상)은 첫날밤을 하인리히 뵐집에서 보냄

▲85년「뵐」사망함

곽복록ㆍ독일 뷔르츠부르크대 독문학박사ㆍ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