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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사도 축일(7월 3일)에 살펴보는 사도 이야기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9-06-25 수정일 2019-06-26 발행일 2019-06-30 제 315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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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한 첫 사도

성 토마스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한 인물’로 떠올리기 쉽지만, 요한복음에 의하면 의심에서 믿음으로 들어가는 표징으로 제시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는 신성(神性)을 정확히 알아보았고 ‘하느님’이라고 신앙을 고백했다. 전승에 따르면 성인은 멀리 인도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7월 3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을 맞아 성경과 전승에 드러난 성인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 쌍둥이

요한복음에는 세 대목에서 토마스 사도가 ‘쌍둥이’로 불린다. ‘토마스’(Thomas)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어로 쌍둥이 뜻을 지닌 ‘토암’의 단축 형태며 그리스어로는 ‘디디무스’라는 말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와 쌍둥이인지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

■ 굳은 신앙과 용기, 솔직함

토마스 사도는 요한복음에서 이면(裏面)이 드러난다. 눈에 띄는 점은 사도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각오까지 보인 열정적인 제자였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16절에서 예수가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유다로 돌아가려 할 때 다른 제자들처럼 물러서거나 망설임 없이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라고 말한다. 굳은 신앙과 용기를 지닌, 예수에게 충실하면서도 기개 있는 지도자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최후의 만찬에서는 솔직히 고백한다. 예수가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 14,4)라고 하자 토마스 사도는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 14,5)라고 답한다. 다른 사도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예수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실토한다.

헨드릭 테르브루그헨의 ‘토마스의 의심’.

■ ‘의심 많은 토마스’

영어에서 ‘의심 많은 사람’이란 뜻의 ‘a doubting Thomas’란 관용어가 나올 만큼 토마스 사도의 불신은 그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사도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직접 예수의 못 자국을 보지 않고는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던 토마스 사도는 부활한 예수를 직접 만난 순간 의심을 거두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란 고백을 남긴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최초로 인정하고 ‘하느님’을 고백한 첫 사도가 됐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에 대해 “요한복음서에서 예수의 신성을 명백하게 고백한 유일한 예”라면서 “그 고백은 전례에서 사용됐던 영향도 반영돼 있어서, 부활 신앙이 예수의 신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요한 공동체의 고백에 대한 확신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고 풀이한다.

■ 인도로 간 사도

토마스 사도의 이후 행적은 전승에 의해서만 전해진다. 에우세비오 등에 의해 언급된 초기 전승에서 토마스 사도는 예루살렘 함락 후 사도들이 흩어졌을 때 파르티아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선포했다고 한다.

한편 위경(전거가 분명하지 않아 성경에 수록되지 않은 문헌) 중 「토마스 행전」에 따르면 그는 서기 52년 남부 인도를 방문해 복음을 전하고 7개 성당을 세웠다. 그리고 72년 밀라포르(현재 마두라스)에서 순교했다.

인도에 가게 된 것은 성령 강림 이후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회의 추첨 결과에 따른 것이라 한다. 처음에는 너무 먼 곳이어서 거부했으나 예수가 기적적으로 개입해 목수로 인도에 가게 했다고 전해진다. 토마스 사도가 건축가와 목수의 수호성인으로 공경 받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인도에서 궁전 짓는 일을 했다는 토마스 사도는 4세기부터 전해오는 교부들 증언에서 군다파르라는 이름의 왕을 개종시키는 등 선교 활동을 펼쳤다.

인도 케랄라주의 말라바르 전례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토마스 사도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토마스 사도에 의해 복음화 되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순교한 토마스 사도가 밀라포르에 묻혔다는 전승을 보존하고 있다. 사도의 유해는 394년 메소포타미아 북부 에데사(현재 터키 우르파)로 옮겨졌다가 후에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치의 오르토나에 안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72년 토마스 사도의 순교 1900주년을 맞아 사도를 인도교회 수호자로 선포했다. 6세기부터 7월 3일에 사도의 유해를 에데사에 옮긴 것을 기념하는 축제를 지냈다. 성 토마스 사도 축일은 여기서 유래됐다. 동방정교회는 10월 6일에 축일을 기념한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