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순례의 점(點)과 선(線) / 이승훈 기자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06-25 수정일 2019-06-25 발행일 2019-06-30 제 315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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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오신 분들이 사라졌어요!”

취재 중 만난 어느 성지 담당 신부님이 푸념을 하신 적이 있다. 신부님은 어느 날 성지 입구 쪽으로 버스가 한 대 들어오는 것을 봤다. 안내할 준비를 하고 언덕 위쪽 성지에서 기다리는데 시간만 하염없이 흐르고 신자들은 오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성지 입구 쪽을 가보니 신자들이 성지 입구에 놓인 도장만 찍고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그 날로 도장은 언덕 위 성지로 옮겨졌다.

요즘 순례의 모습을 보면 꼭 점(點)같다.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과정은 생략되고 그게 도장이든, 아니면 발도장이든 콕 ‘찍고’ 떠난다.

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를 만난 공간은 점이 아니라 선(線)에 가까워 보인다. 제자들은 길에서 예수를 만났고 함께 걸었다. 마리아도 예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었고, 예수 부활 후에도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오로 사도가 예수를 만나 체험했다.

그러나 점이라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되기 때문이다. 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 위원회가 발행한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에 모든 도장을 찍은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처음에는 재미로 도장을 찍던, 점을 찍던 순례가 거듭되면서 점차 신앙선조를 느끼고, 하느님을 체험하는 진짜 순례로 변했다고. 거듭되는 순례 속에 점이 선이 된 것이다.

한국교회는 순교로 하느님을 만난 신앙선조들이 세운 교회다. 어쩌면 그 역사는 점일지도 모르지만, 성지순례를 통해 ‘나’라는 점과 이어지며 선이 된다. 그 선은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길로 이어진다.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