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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학산책] 6 토마스 머튼의「칠층산」

이영걸ㆍ미국 세인트루이스대 영문학박사ㆍ현 한국외국어대 영어과교수
입력일 2019-06-20 수정일 2019-06-20 발행일 1991-11-17 제 1780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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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입회까지의 고뇌ㆍ성찰 수록

「참회록」에 비견되는 자전적 고백
“신앙에 근거한 시적통찰력” 감동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의「칠층산」 (The Seven Storey Mountain)은 1948년에 출간된 자서전으로 흔히 성 아우구스티누스의「참회록」에 비견되는 영신생활의 기록이다. 자서전은 대개 한 사람의 만년에 집필되지만 머튼의 경우는 33세에 출간되었고 이후에 평신도와 수도자를 위한 방대한 양의 신앙서적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가 된다. 그러나「칠층산」의 의의는 23세에 가톨릭에 입교하고 3년후에 트라피스트회에 입회한 젊은 지성인의 정신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다.

회심(回心)의 주제는 그리스도교 문학의 중심 주제일 뿐만 아니라 머튼의 경우 세속적 가치가 팽배한 20세기 문명속에서 우여곡절을 통해 신앙의 빛을 찾았던 만큼 회심의 과정은 더욱 극적이며 감동적이다. 가톨릭 가문에 태어난 사람들이나 성년에 이르러 입교하는 사람이나 삶의 어떤 단계에서 지성과 감성에 근거해 뚜렷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칠층산」의 감동력은 회심을 겪은 이들에게는 친밀한 공감을 느끼게 하고 영적인 확신을 찾아 방황하는 이들에게는 적지않은 감화를 줄것이다.

평신도와 수도자들을 위해 쓴 그의 많은 신앙서적에도 금세기 문명과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지만「칠층산」은 성소(聖召)에 응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의 세목이 자상히 제시되어 있기에 구체적인 감동을 준다. 프랑스와 영국과 미국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머튼의 삶의 여러 단계는 금세기 전반(前半)의 시대적 분위기로 실감을 주며 한 영혼의 성장과정을 소묘했다는 점에서는 교양소설을 읽는 친근미를 느끼게 한다.

1938년 가톨릭에 입교하기까지의 가족사(家族史)는 회심과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미국인인 모친은 1921년 위암으로 사망하고 뉴질랜드 태생이며 화가였던 부친은 뇌에 악성 종양이 생겨 1930년에 사망하였다. 머튼과 세살 터울 진 남동생 죤 폴을 보살펴 주던 외조부와 조모는 각각 1936년, 37년에 사망하였다. 모친은 퀘이커 교도였고 부친은 종교적 영성과 훈화로 머튼에게 감화를 주었으나 특정 교회의 성원은 아니었다. 머튼의 입교와 곧 이은 트라피스트회의 입회는 종교적 시인들과 신학 서적의 탐독과 로마 성당 순례 등의 복합적 영향에 말미암은 것이지만 조실부모의 시련도 은연한 계기가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종교적 성향을 키워 준 시인으로는 윌리엄 블레이크, 제랄드 맨리 홉킨즈, 리처드 크래쇼, 단테 등이다. 「칠층산」의 제목은 단테의 「신곡(神曲)」에서 따온 것으로 연옥의 칠층 정죄산(淨罪山)을 뜻한다. 일곱 가지의 죄는 「교만, 인색, 음욕, 분노, 탐욕, 질투, 게으름」으로 머튼의 회심이 20세기 문명을 가득 채운 세속적 병폐와 개인적 삶의 실체험에 근거한 윤리적 결단임을 말해 준다. 독자적으로 철학서를 읽은 한편 쟉크 마리땡의「예술과 스콜라철학」, 에띠엔느 질송의 「중세철학」등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유년기와 가족사와 케임브리지, 콜럼비아 대학의 교육과정을 서술하는 머튼의 자서전은 입교 후 수도자의 시점(視點)에서 구성하고 회상한 것이지만 회심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를 자세히 추적하되 철학적ㆍ이념적(理念的)인 고찰이나 분석보다는 체험적ㆍ감성적인 면이 더 두드러진다. 성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에서 보는 시간(時間)에 대한 철학적 분석같은 순간은 비교적 드물고 유리적 파단과 감성적 열기가 주조를 이룬다.

매우 존경하였으며 많은 감화를 준 부친의 사망을 회고하며 쓴 다음의 구절은 뜨거운 부자간의 정을 견실한 신앙으로 긍정한 것이다. 『나는 어느 날엔가는 살아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를 다시 볼 것을 희망하는 까닭이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그분의 은총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을 구분 자신의 부활의 영광 안에서 살아나게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과 육신은 그분의 신적(神的)상속의 영광에 참여케 할 권능을 가지고 계심을 나는 믿는다』

은총에 대한 정의도 간결하며 정곡을 찌른다. 『은총은 무엇인가? 이는 하느님의 생명으로, 인간이 이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생명은 사랑이다』믿음의 은총, 치유의 은총을 기구함은 결국「하느님의 생명」을 구하고 의지하는 일인 셈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위기에 이른 서구문명을 유념함에 있어서도 특정한 세력이나 계급에 책임을 돌리는 대신 개개인의 윤리적 죄에 연관시켜 생각한다. 현대의 혼돈과 폭력과 공허에 맞선 기도의 힘을 묵상함에 있어서도 신령한 섭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드러낸다. 『…그들의 기도의 힘(그들의 기도소리 속에 힘을 감추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이 탐욕과 허욕과 살인과 색욕과 온갖 죄로 가득 찬 더러운 세상을 내리치려는 하느님의 팔을 놀랍게도 꼭 붙잡고 있는 것이다』.

머튼의 자서전은 기억의 자세함과 인물묘사의 흥취와 함께 빈번한 풍경묘사의 묘(妙)를 보여준다.

여러권의 소설 시작(時作)과 시인으로서의 관찰및 언어구사력을 상기케 한다. 다음의 구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신앙의 눈으로 파악한 것이며 소박한 물체속에 감동적인 시심(時心)을 느끼게 한다. 『어느 꽃이 피든지, 어느 씨가 땅에 떨어지든지, 어느 밀 이삭이 바람에 고개짓을 하든지, 이 세상 전체에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자비를 설교하지 않는 것이없고 선포하지 않는것이 없다.』

1938년 입교하여 41년에 수도회에 입회했으니 매우 신속한 결단으로 보이지만 세속의 삶과 성소의 부름에 응답하기까지의 긴장을 묘사한 구절들은 담담한 서술 속에 준렬한 자아성찰과 성직에 대한 강한 매력을 드러낸다.

『나의 보화는 모두 지상에 있었다, 나는 작가, 시인, 평론가, 교수가 되고 싶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지성의 쾌락, 감관의 쾌락을 즐기기를 원했고, 이러한 쾌락을 누리기 위하여는 영적 파멸로 끝날 줄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 처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문필에 종사하며 교단에 서는 일이 경건한 영신생활과 어긋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세속적 삶의 견인력이 매우 강했던 만큼 성직에 대한 갈망이 더욱 절실해 진 것이 아닐까. 다음의 구절은 수덕생활에 대한 욕구를 표현성 있는 비유와 심리적인 통찰로 훌륭히 표현한다.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식물이 햇별속에 잎사귀를 펴듯, 넓고 깊은 고독속에 잠겨 하느님의 응시속에 파묻히는 삶이었다. 즉 나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고 하느님과의 일치에만 거의 전적으로 지향하는 규칙이 필요하였다.』

햇볕 속에 잎사귀를 펴는 식물에 견준 수동적 평화와「하느님의 응시 속에 파묻히는 삶」의 겸손과 행복과「격리」와「지향」에 암시된 영적 필요 및 결단이 미묘히 어울어져 있다. 이후의 수도생활은 묵상과 기도와 노동과 함께 시작(時作)과 저술활동을 포함하였으니 작가, 시인, 평론가, 교수가 되고 싶었던 세속적 야심은「하느님과의 일치」를 지향하는 삶에 의해 성화(聖化)되어 예측치 않은 방향에서 재능의 개화(開花)를 보인다. 1944년의「30편 시집」과 48년의「칠층산」은 성화된 재능의 첫열매인 만큼「하느님의 응시 속에 파묻히는 삶」의 내용과 의의는 궁극적으로는 세상에 알려지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칠층산」은 1945년까지의 삶을 기록한 것으로 이자서전에는 두 편의 자작시가 수록되어 있다. 하나는 트라피스트회에 입회하기 직전쿠바 여행에서 얻은 「코블의 성모(聖母)를 위한 노래」요, 또 하나는 1943년 전사한 아우를 위해 쓴 애가(哀歌)이다.

성모를 위해 쓴 노래는 수도생활을 결심한 이의 행복감을 담은 시로 이후의 시작(時作)을 터놓은 회심작이며「칠층산」에서는 코블의 대성당을 찾은 후 성모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타자(打字)한 것이라 하지만 시의 해석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없기 때문에 평범한 문체이지만 난해하게 느껴진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이 시를 읽어오다가 근년에야「칠층산」을 읽으며 이 시의 뜻을 새로이 묵상하였다.

이 시는 사상(思想)이나 논리의 적개 대신 이미지 및 비유에 심경을 담은 것이기에 심경을 파악함에 올바른 접근의 길이 있다. 『백인 처녀들이 나무처럼 머리 쳐들고/흑인 처녀들이 거리에/홍학(紅鶴)처럼 비치며 가네. /백인 처녀들이 물처럼 소리 높여 노래하고/흑인 처녀들이 흑처럼 조용히 이야기하네. /백인 처녀들이 구름처럼 팔을 벌리고/흑인 처녀들이 날개처럼 눈을 감았네.』여기까지가 이 시의 전반(前半)이고 후반은 이렇게 이어진다-『천사들이 종(鐘)처럼 머리 숙이고/천사들이 완구(玩具)처럼 고개를 드네/하늘의 별들이/원(園)이루어서 있기에./모자이크 땅의 조각, 조각이/새처럼 일어나 날아가네.』

머튼이 찾아간 코블의 대성당에는「여왕 복장에 관을 쓴 명란한 작은 성모님」이 안치되어 있었으니 백인 처녀와 흑인 처녀들의 모티프는 대성당의 방문과 연관된 것이다. 처녀들의 거동과 동작은 자연적 아름다움과 함께「물」과「흙」의 비유가 암시하듯 찬미와 명상의 순간을 상기시킨다. 「구름」처럼 벌린 팔과「날개」처럼 감은 눈도 신심의 수용성과 묵상의 깊이를 시사한다.

여기에 담긴 안심(安心)과 기쁨을 파악하면 후속되는 부분은 쉽게 풀린다. 천사들도 하느님의 슬기가 현시된 우주의 질서와 아름다움에 찬탄하고, 모자이크 그림으로 비유된 땅도 높은 세계를 향해 날아오른다. 이 시는 이처럼 만물의 조화와 신령한 힘을 향한 찬미와 흠숭과 인력(引力)을 노래한 것이다.

나무와 홍학에 비겨 거리풍경을 소묘하고 물과 흙의 원소를 언급한 후 하늘의 구름과 날개와 별에 시선을 옮기고 드디어는 모자이크에 비유된 땅의 상승(上昇)으로 끝맺음으로써 우주의 질서와 신령한 힘의 인력을 암시한다. 혼돈과 폭력이 가득한 지상적 삶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회심이 주는 안심과 희열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이시는 성모(聖母)를 향한 열렬한 찬미가이자 수덕생활을 앞둔 머튼의 행복감을 뚜렷이 드러낸다고 하겠다.

코넬대학에 다니는 동생 죤 폴은 형처럼 영적 공허에 시달리다가 수도생활을 시작한 형의 권유와 지도로 세례를 받는다. 카나다 공군에 입대한 그는 실전에 투입되기 직전 결혼까지 하였으나 임무중 북해에 추락되어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사망한다. 「아우를 위해」는「1943년 전투 중 실종되다」의 부제가 시사하듯 실종 소식에 접한 충격과 슬픔을 다룬 작품으로 실종 소식 직후에 쓴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망 소식을 들은 후 애초의 심경을 부각시킨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황량한 연기 자욱한 나라/어디에서 몸을 쓰러뜨렸더냐?/어떤 위험한 풍경속에서/불행한 영혼아 길을 잃었더냐?』이처럼 둘째 구절은 수도생활의 현장에서 아우의 죽음을 애도한 첫째 구절과 함께 실종의 소식만으로도 전사했으리라는 예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개인적 서정의 강렬함과 함께 비극적 인간조건을 그리스도교적 고난과 구원의 역사관속에 포섭했다는 점에서 비상한 감동과 보편적 의의를 지닌다.『오라. 내 고심(苦心)속에 쉴자리 찾고/내 슬픔에 머리 기대라/ 내 목숨 내 피를 모두 줄테니/보다 편한 잠자리를 마련하여라-/내 입김 내 죽음을 네네 줄테니/더 나은 휴식을 취하도록 해라.』이러한 진솔한 표현과 함께 형제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의속에 파악하는 신심으로 위로의 모티프를 제시한다. 『너의 4월의 잔해(殘骸)속에 그리스도는 살해되시고/내 봄의 폐허에서도 울고 계신 까닭이다/ 이 분이 흘리시는 값진 눈물은/아쉬운 손바닥의 너의 노자(路資)니/고향길 찾아 돌아오너라.』이 시의 심원한 슬픔과 궁극적 위로의 정은 부친을 애도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속에 재회를 희망한 구절과 함께「칠층산」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이룬다.

이영걸ㆍ미국 세인트루이스대 영문학박사ㆍ현 한국외국어대 영어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