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프라도 사제회 사제의 하루 의정부교구 송추본당 주임 김경진 신부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9-06-18 수정일 2019-06-19 발행일 2019-06-23 제 3150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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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마음 닮은 따뜻한 아버지이자 ‘동네 뒷산’ 같은 사제로 살고 싶어요

다양한 피정 마련해 영적 양식 내어주고 주어진 물적 예물도 본당 공동체에 나눠
사제관 1층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방
신자들에게 기쁨 주고자 작은 이벤트도 
“사제 성화, 예수와 닮은 정도 점검하는 것”
“사제가 교회의 공무원이 돼서는 안 됩니다. 사제가 직업이라는 말은 슬픈 현상 중 하나입니다.”

‘가난한 사제단’으로 불리는 프라도 사제회(이하 프라도회) 한국지부장 한영수 신부는 사제를 직업으로 바라보게 하는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사회의 이상적인 사제상으로 ‘신자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친구가 돼 줄 수 있는 사제’를 꼽았다.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쾌락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사제들은 다양한 유혹에 도전을 받는다. 때문에 성화(聖化)를 위한 사제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사제 성화의 날(6월 28일)을 맞아 교구 사제로서 프라도회의 카리스마에 따라 사도직을 수행하며, 매일매일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노력하는 김경진 신부(의정부교구 양주 송추본당 주임)의 하루를 소개한다.

■ 사제는 먹히는 존재

“하하하하하~”

6월 15일 오전 10시 송추성당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김경진 신부가 한 마디 던지며 특유의 웃음소리로 호탕하게 웃자, 신자들도 박수치며 따라 웃었다. 이들은 피정에 참가한 의정부 송산본당 신자들이다.

김 신부는 본당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월례 피정부터 시작해 하루피정, 순례와 함께하는 피정, 소그룹 및 단체 피정 등 다양한 피정을 요일에 상관없이 진행한다. 피정에 대해 별도로 홍보한 적은 없지만 알음알음 소문이 났다. 토요일 피정은 11월까지 예약이 꽉 찼을 정도로 호응이 좋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생명’을 끊임없이 신자들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김 신부는 2시간 반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강의를 열정적으로 이어갔다. 본당 신자들은 이런 김 신부를 두고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며 “이런 사제 처음 본다”고 입을 모은다. 본당 봉사자 김수미(레베카)씨는 “정말 사제같은 사제”라면서 “항상 자신보다 본당 교우들을 위해 사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본당 사랑꾼”이라면서 “선물이나 돈을 받으시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주시거나 본당 신자들을 위해 모두 내어 놓는다”고 덧붙였다. 신자들이 서로서로 김 신부 옆자리에 앉으려는 이유다.

그는 항상 본당을 찾는 신자들을 어떻게 기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빼빼로데이(11월 11일) 등에는 늘 신자들을 위한 작은 이벤트를 준비한다. 작년 어린이날에는 캐릭터 인형 탈을 쓰고 신자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본당 신자들에게 그는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는 ‘친구’ 같으면서도 너그러운 ‘아버지’ 같은 사제다. 그의 이런 모습 때문인지 현재 본당 주일미사 참례율은 50% 가까이 된다. 그는 “주님 안에서 제가 할 일은 본당 최고의 아빠가 되는 것”이라면서 “송추 교우들을 위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10:00 6월 15일 송추성당에서 피정을 지도하고 있는 김경진 신부. 그는 강의 내내 호탕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12:30 김경진 신부가 점심시간 신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18:00 김경진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김 신부는 신자들에게 ‘먹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겸손한 자세로 살아 간다.

김경진 신부는 지난해 어린이날 캐릭터 탈을 쓰고 깜짝 이벤트를 열었다. 김 신부는 늘 신자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깨어 있는다. 의정부교구 송추본당 제공

사제관 1층에 위치한 ‘설렘 다방’ 입구.

■ 가난은 저에게 맞는 옷

강의가 끝난 뒤에는 점심시간이 이어졌다. 그는 음식을 남기지는 않되, 절대 과식하지 않는다. 사람이나 교회나 살이 찌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프라도회 사명에 따라 살아 가고 있는 그는 한결같이 ‘가난’을 사제 생활의 모토로 삼아 왔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가난은 저에게 맞는 옷”이라면서 “사이즈가 큰 옷을 입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프라도회는 교황청 설립 재속 사제회로, 복자 앙트완느 슈브리에 신부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프랑스 리옹에서 설립했다.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라는 믿음 아래 ‘구유’에 계시는 그분처럼 가난하고 ‘십자가’에 달린 그분처럼 못 박히며 ‘감실’에 계신 그분처럼 먹히는 사제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국내 프라도회 사제는 170명 정도다.

실제로 그의 삶은 오롯이 가난한 길이었다. 2000년 12월 서울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 신부는 2004년 의정부교구가 분가할 때 의정부교구를 선택했다. 3년 전에는 교구에서도 교적상 신자수 320여 명으로 작은 본당인 이곳 송추본당에 자원했다. 작고 가난한 곳에서 할 일이 더욱 많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그는 해마다 통장정리를 하며 남은 돈을 필요한 곳에 기부하기도 한다.

박미덕(레베카)씨는 “처음 본당에 오신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어렵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의 편에서 복음에 가까운 삶을 사신다”면서 “신부님의 호탕한 웃음은 삶의 긴장감마저 풀어헤친다”고 밝혔다.

점심을 먹고 사제관 1층에 위치한 ‘설렘 다방’으로 이동했다. 그는 사제관 1층을 누구나 부담 없이 쉬다 갈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설렘 다방’도 그 일환이다. 점심을 먹은 뒤에도 그의 열정적인 강의는 2시간 넘게 계속됐다. 심지어 3시로 예정돼 있던 파견미사는 4시가 다 돼서야 시작했다.

■ 바보같은 사랑

피정이 모두 끝난 뒤 떠나는 신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배웅을 마친 그는 잠시 숨을 돌린 뒤 오후 6시 미사를 준비한다.

하루를 온전히 신자들을 위해 바친 그는 자신보다 피정을 도와 준 본당 베로니카회 봉사자들을 먼저 생각하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다. “베로니카회가 없었으면 피정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70대 봉사자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런 그의 사랑은 이미 본당 신자들이 먼저 느끼고 있었다. 미사가 끝난 뒤 만난 전 사목회장 신동수(다미아노)씨는 “신부님 눈에는 사랑밖에 안 보인다”며 “신자들의 가장 아픈 부분을 알아봐 주고 각각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신다”고 밝혔다. 이어 “신부님이 오신 뒤 본당 공동체가 훨씬 화목해졌다”고도 했다.

김 신부는 “좋아하는 사람은 늘 생각나는 것처럼 사랑하면 그만큼 관심이 간다”면서 “사랑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사랑은 내가 먼저 낮아지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희생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김 신부에게 사제 성화가 무엇인지 묻자 고민 없이 “얼마나 예수님을 닮아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제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메꾸고 기도하며 거룩한 마음으로 지내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다음날인 주일 일정도 미사와 피정 등으로 빡빡한 김 신부는 “동네 뒷산 같은 사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받아 줄 수 있는 그런 사제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