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인간이었기에 더 큰 울림 주는 신앙의 모범 겁 많고 우유부단한 베드로와 교회 박해하던 악랄한 바오로 예수 만난 뒤부터 변화된 삶 살며 ‘교회 반석’ ‘이방인의 사도’ 거듭나
6월 29일은 전례력으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이다. 두 사도는 교회의 본질과 특징의 양면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다. 베드로 사도는 일치의 상징이다. 이를 위해 그에게 수위권이 부여되면서 교회의 반석으로 자리매김한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리스도교를 전 세계로 확장시켜 진보와 개방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뛰어난 업적을 펼친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 흙수저 시몬(베드로), 금수저 사울(바오로) 완전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 전, 두 사도의 출생과 성장과정은 많은 차이가 있다.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접촉이 잦았던 갈릴래아 벳사이다 지방에서 어부 요한의 아들로 태어나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어부로 일했다. 결혼한 후에는 카파르나움으로 이사해 장모를 모시고 살았고,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요한 세례자를 따르는 제자였다. 군중들을 가르치던 예수는 어부 시몬의 배에 올라타 ‘사람 낚는 어부’로 그를 부른다. 시몬을 유심히 본 예수는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고 불렀다. 베드로는 훗날 실제로 교회의 반석이 되지만 예수의 부르심이 있기 전까지는 지극히 단순하고 가난한 어부였다. 반면 바오로는 열심한 정통 유다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엄격한 율법 교육을 받은 바리사이였고, 그리스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운 대도시 킬리기아의 수도 ‘타르수스’라는 지역에서 자랐다. 또 로마 시민권을 태생부터 갖고 있었다. 그가 지녔던 유다식 이름 사울과 로마-그리스식 이름 바오로는 이렇게 화려한 배경에 기인한다. 아울러 바오로가 ‘이방인의 사도’로서 지중해의 여러 도시들을 왕래하며 복음을 전하는 데 이런 문화배경은 큰 도움이 됐다. ■ 겁쟁이 베드로, 박해자 바오로 확연히 차이나는 두 사도의 출생과 성장배경은 각기 다른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성경에서 베드로는 두려움에 가득 찬 모습으로 자주 나타난다. 예수와의 첫 만남부터 그러하다. 배에 올라탄 예수의 지시로 많은 물고기를 잡자 베드로는 기뻐하기보다 예수 앞에 무릎 꿇고 말한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이런 그에게 예수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타이르며 첫 제자로 부른다. 또 스승의 부름에 물 위로 발을 옮겼지만 두려움에 싸인 베드로는 허우적대고, 이 모습을 보며 예수는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이후 절정의 순간인 예수가 수난당할 때도 두려운 마음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자신의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한다. 겁 많았던 베드로와 달리 어려서부터 유다인으로서 철저한 종교교육을 받았던 바오로는 교회를 심하게 박해했다고 고백한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필리 3,6) 때문에 바오로는 율법을 비판한 예수를 저주받은 자로 여겼다. 나아가 율법 신봉자였던 바오로는 율법과 성전에 비판적인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선다.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사도 6,11)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사도 8,1) 이와 같이 바오로는 성전과 모세의 율법을 거슬러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