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기다려온 당신… 죽어서라도 곁에 묻히고 싶어요” 학도병 남편 전사한 후 신앙의 힘으로 살아와 마지막 소원은 유해 찾아 국립묘지 묻히는 것
경기도 수원 보훈원에 들어서면 태극기 밑으로 ‘국가유공자의 집’이라는 문구가 적힌 출입문이 보인다. 6·25 한국전쟁 중 전사한 남편 고(故) 성복환씨를 70년 가까이 가슴에 묻고 사는 김차희(바르바라·91) 할머니가 외롭지만 기도 속에서 여생을 보내는 곳이다.
이 작은 공간에는 한국 현대사의 쓰라린 아픔,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전쟁 미망인의 한 맺힌 인생, 그러나 신앙의 힘으로 이 모든 상처를 극복해 낸 한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이 서로 얽히고설킨 채 공존하고 있다. ■ 한 장의 편지글에 눈물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 두 칸짜리 생활공간이 나오고 큰 방 벽에 ‘60년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이란 제목의 붓글씨 글이 액자에 걸려 있다. 글쓴이는 ‘김차희(83세)’라고 기록돼 있다. 김 할머니가 보훈원에 들어오기 전인 2010년경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김 할머니는 이 글을 볼 때마다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다. 마지막 문장 옆에 끼워진 한 장의 사진이다.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한 남편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남편 사진 바로 밑으로는 젊은 시절 김 할머니의 사진이 다정히 놓여 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시리기도 하다. 올해 6월 6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모식에서는 김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이 소개되면서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과 김정숙(골룸바) 영부인 등 참석자들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탤런트 김혜수씨가 ‘60년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을 요약한 편지글을 김 할머니를 대신해 낭독하며 눈물샘을 자극했다. A4용지 한 장이 조금 안 되는 이 편지글은 스무 살에 결혼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김 할머니의 인생사를 애절하게 묘사했다. 1928년 경북 구미시 선산읍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948년 3월 16일(음력)에 한 살 연하인 성복환씨와 혼례를 치렀다.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이 집안끼리의 중매로 만나 경북 상주 시댁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남편이 부산 동아대에 재학하고 있어 방학 때만 잠깐씩 집에 왔다 가곤 하다 보니 얼굴 본 기간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 학도병으로 끌려간 남편의 쪽지글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1950년 6월 25일 민족사 최대 비극인 6·25가 터지고 한 달여가 지나 남편이 학도병으로 끌려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학도병들은 2주 정도 짧은 훈련을 받고 전투에 투입됐다. 남편의 입대 날짜는 정확히 1950년 8월 10일이었다. 이때만 해도 남편을 다시 못 만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남편은 전장 투입을 앞두고 같은 해 9월 어느날 경북 상주 상산초등학교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집안에 쪽지글을 써 보냈다. 김 할머니는 “아마도 남편이 집안 어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쪽지 내용이 무엇인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어렴풋이 회고했다. 마지막 쪽지를 남기고 경북 백천지구 전투에 나선 남편은 그해 10월 13일 전사했다. 전사통지서에는 ‘성복환 일병’이라고 적혀 있었다. “전사통지서를 집안 어른들이 받고는 저에게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친척한테 전해 듣고서야 남편이 전사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남편을 잃었다는 슬픔과 함께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도 없이, 자식도 없이 시댁 식구들 틈바구니에서 저의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전사한 남편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고 전사 일자와 장소만 통지됐을 뿐이다. 6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편 유해는 찾을 기약이 없다.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