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이벽이 썼다는 「성교요지」는 가짜다 / 윤민구 신부

윤민구 신부rn(원로사목자)
입력일 2019-06-11 수정일 2019-06-11 발행일 2019-06-16 제 314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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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8일 장로회신학대에서는 아시아기독교사학회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동서그리스도교문헌연구소의 김현우 연구원과 김석주 부소장은 공동 발표문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공표하였다. 중국에서 활동한 미국 개신교 선교사 “윌리엄 마틴(1827-1916)이 쓴 「The Analytical Reader」의 「쌍천자문(雙千字文)」과 이벽의 「성교요지」 본문이 너무나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후 「성교요지」가 마틴의 「The Analytical Reader」의 내용 일부를 빼서 쓴 별쇄본임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 발표는 ‘연합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SBS도 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고 구글에서 「The Analytical Reader」란 책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이미 책 전문이 파일로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이벽이 썼다는 「성교요지」와 비교해 보았다. 어처구니없게도 본문은 물론 주석까지 같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학술대회 발표자들이 말했듯이 마틴의 책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뽑아서 「성교요지」에 옮겨 놓았다는 것뿐이었다.

‘이벽이 썼다는 「성교요지」를 마틴이 베낀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나는 이미 2014년에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연구」란 책을 통해서 ‘성교요지’, ‘천주공경가’, ‘십계명가’, ‘만천유고’, ‘니벽(이벽)전’ ‘유한당언행실록’ 등이 모두 가짜임을 밝혔다. 그것들은 모두 1930년대를 전후하여 누군가 수집가들에게 팔아 돈을 벌려고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사기성이 농후한 거짓 자료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용어 때문이었다. 천주교의 입장에서 볼 때 내용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용어였다. 다시 말해서 번역의 문제도 해석의 문제도 아니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용어의 문제였던 것이다.

「성교요지」의 본문과 주석에는 성경과 관련된 인명이나 지명 등 고유명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만일 이벽이 「성교요지」를 썼다면 당연히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나 다른 수도회 선교사들이 쓴 책에 나오는 용어들을 사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벽을 비롯한 초기 천주교 신자들은 그런 책들을 읽고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교요지」에 나오는 많은 용어들은 이벽이 죽고 나서도 30년이 지나서 중국 개신교에서 처음으로 한문 성서를 펴낼 때 비로소 쓰기 시작한 개신교 용어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이벽이 죽고 나서도 100년이 지나 들어온 개신교 용어들이다. 그것도 중국, 일본, 한국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철저한 개신교 용어들이다. 그러니 이런 용어들이 나오는 「성교요지」를 이벽이 쓸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개신교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성교요지」에 개신교 용어들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이벽이 썼다는 「성교요지」가 미국 개신교 선교사가 쓴 책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니 개신교 용어가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제 「성교요지」가 개신교 선교사의 글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이상, 더 이상 「성교요지」에 대한 미련과 환상을 버리고 이 희대의 사기극에서 벗어나야 한다.

윤민구 신부rn(원로사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