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사제단상] 냉담 할머니의 봉성체가서 겪은 일/윤병훈 신부

윤병훈 신부ㆍ충북 음성군 음성읍 오성리 음성천주교회
입력일 2019-06-05 수정일 2019-06-05 발행일 1989-05-07 제 1654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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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얀 것은 그만 가져와”
봉성체란 주일미사에 참여치 못하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노인들에게 성체를 모셔다 주는 일을 말한다. 어느 날 깊숙이 박혀있는 시골마을에 냉담자 할머니가 계신다는 말을 듣고 안내를 받아 방문을 했을 때 일이다.

초라한 오막살이집에 늙으신 내외분이 살고 있었다. 방안에 들어서니 어수선하기가 말이 아니었다. 할머니께서 세례를 받았다기에 몇 년 쉬셨느냐고 알아보니 20년이 훨씬 넘었단다. 본명이 무어냐고 묻자『본명이 더러워서』하며『뭐 비벼라고 했던가?』라고 하신다. 그런 본명이 없다고 하고는 『아마 비비나라고 하지 않았어요?』하니까 그제서야 『그런가벼, 본명이 더러워서 이렇게 사정없이 아픈가벼』하고 말씀하신다. 어감이 그 분의 귀를 되게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옛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주의 기도를 외우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비신자여, 네 이름이 거룩하심이 나타나며…. 또한 우리를 흉악에서 구하소서 아멘』하시며 더듬거리시니 신자는 틀림이 없었다. 고백을 하라고 하자 산다는 것이 모두 죄라고만 하시니 대신 성찰을 시켜준 다음 마음깊이 뉘우치라고 일러주자 딴소리만 퉁퉁하신다. 『여기도 아프고, 요기도 아프고…』머리 속을 교통정리 해드리고 싶은데 시종일관 왔다 갔다 하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에 사죄경을 한 후 예수님을 영해 드렸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봉성체하는 날이었다. 그 할머니께서 인상이 달라지시며 하시는 말씀『이제 하얀 것 그만 가져와』라고 하신다. 가뜩이나 봉성체 환자 중에는 별로 신통한 신자를 만나지 못하는지라, 이 말을 듣는 순간 피로가 어깨 위를 누른다. 『왜요』하고 묻자 대답이 재미있다. 『그 허연 것 몇 번째 먹지만 별로여! 나는 그 하얀 것 받아먹으면 허리가 끊어지게 아픈 것이 금방 멈춰질 것으로 알았거든』

정말 부적, 부적했는데 바로 이것이 부적이 되어버린 성체로구나 생각하고는, 『할머니! 매달 한 번씩 저희들이 오는 것은 할머니를 보고 싶어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성체 때문에 옵니다. 이제 다음부터는 안 올랍니다』하며 언성을 높였더니『그래도 또 와! 하얀 것은 그만 가져오고 그냥 자주 오란 말여』하신다.

주님! 이 지극한 신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입니까? 젊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더라면 이런 불상사가 없었을 텐데, 성질이 급하고 말재주가 썩 좋지 못한 나로서는 더욱 마음 안에 피곤이 쌓인다. 김치, 깍두기, 밥은 소화를 시키더라도 이 성체를 소화시키기에는 보통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속으로 나도 모르게 주님께 응원을 청한다. 『주님 용서 하십시요, 당신이 이 할머니의 마음속에 들어가셔서 몇 번이고 먹히시면서 당신의 오묘한 신비를 깨우쳐 주소서』하며 오늘도 성체를 모셔주기로 마음을 굳힌다. 성체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심어주신다. 유식한 자이고 무식한 자이고, 성체를 모시는 자가 깨닫건, 깨닫지 못하건 먹혀주신다.

나도 그 옛날 그랬으니까. 무턱대고 먹고 아무 노력 없이 먹었으니까. 그래서 실증나면 별 효험이 없어 그만 하겠다고 어머니께 말했으니까. 예수님께서 수없이 우리 안에 오신 다음에야 비로소 왜 먹히시는지 깨달을 수 있었듯이 영성체의 횟수를 거듭 할수록 그 할머니도 이 세상 끝나는 그 시각에 예수님 십자가 곁에 선 오른쪽 강도처럼 될 수도 있겠다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언제고 주님께 응원을 청하면서 함께 한다면 성체의 오묘한 신비도 헤아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오늘도 무척 피곤하게 만드는 그 할머니의 모습이 꼭 새롭게 되리라고 믿으며 소신껏 수녀님과 함께 작은 교리를 통하여 오묘한 신비를 헤아리도록 애쓰고 기도한다. 몇 번이고 이 할머니께 사랑을 갖고 예수님을 모셔드리면, 왜 우리가 방문하는지를 깨닫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하고 외칠 날이 오겠지. 바로 그때가 구원의 때일 것이다. 한 할머니의 완성을 위하여 인간적인 생각을 접어두자. 나 자신의 짜증과 피로는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일하기 때문이라고 반성해 보며, 내일도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를 찾아뵈야겠다.

윤병훈 신부ㆍ충북 음성군 음성읍 오성리 음성천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