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누구도 어느 것도 방해할 수 없는 힘, 성령

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
입력일 2019-06-03 수정일 2019-06-05 발행일 2019-06-09 제 3148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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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제1독서(사도 2,1-11)  제2독서(1코린 12,3ㄷ-7.12-13)  복음(요한 20,19-23)

인간을 가장 병들게 하고 무너지게 하는 것은 오해와 불통, 소통에 대한 거부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세상의 모든 오해와 비난, 굴욕을 견디게 하는 힘은 진정어린 소통과 직관적 이해일 수 있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의 전례 본문들은 소통과 이해, 그로 인한 일치로 시작된 교회의 탄생을 선포합니다.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린 부활시기의 절정에서, 성령의 오심을 통한 생명의 활기와 그 장엄한 역동성을 힘차게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 복음의 맥락

요한복음은 ‘부활 사건’에 대하여 모두 2개의 장(章)을 할애하고 있는데 이는 공관복음에 비하여 현격히 많은 분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차이를 드러내는데, 공관복음서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적이고 분명한 사실로 묘사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반면, 요한복음은 십자가상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과 영광의 완성을 위한 필수적 여정임을 강조하면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현존하시고 당신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심에 집중합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은 부활 사건과 제자들에게 준 ‘성령’을 연결시킴으로써, 제자들이 ‘다시 살아나신 분’의 ‘숨’으로 새 창조됨을 표명합니다.

■ 성령과 새로운 숨

이 새로운 창조는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요한 20,19)에 발생합니다. 곧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은 것은 부활하신 날 저녁의 일이고, 이는 성령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선물임을 암시합니다.

고대 근동인들에게 바람은 매우 신비로운 것이었습니다. 비(非)가시적 존재이기에 인간이 통제할 수 없고(오히려 바람이 인간을 통제), 소유하거나 잡을 수 없지만 감각을 통해 그 존재 여부를 감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신성(神性)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바람과 연관된 또 다른 소재가 ‘숨’인데, 인간에게서 나오는 바람이 ‘숨’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처럼 ‘숨’ 역시 잡을 수 없고 뚜렷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아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사물 안에 침투하여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바람과 유사한 특성을 갖습니다. 창세 2,7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콧구멍에 숨을 불어 넣어 주시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하느님의 숨이 인간 안에 들어가 ‘생명체’가 됨을 선언함으로써, ‘숨’(생명)이야말로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속성’임을 피력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22절) 넣으시는데 이는 새로운 창조의 선언이며, 이후 제시된 죄의 용서에 대한 권한 부여가(23절) 예수님께서 수행하셨던 당신의 일을 이제 제자들을 통해 지속하시고자 하는 것임을 알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생활이 마무리될 무렵, 당신의 현존과 동일한 연속성을 가진 존재로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지오토 디 본도네의 ‘성령 강림’.

■ 성령과 혀 모양의 불꽃

제1독서를 통해 루카가 전하는 오순절(사도 2,1-11)의 이야기에서도 성령의 존재는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와 “불꽃 모양의 혀”(2-3절)라는 ‘상징’을 통해 묘사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 전통에서 ‘바람’은 언제나 신적인 현존을 드러내는 소재였습니다. ‘불’ 역시 동일한 기능을 갖는데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절대적 힘이고 그 어떤 장애도 소멸시키는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불”은 오늘 본문에서 “혀”의 이미지와 연결되는데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리고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합니다.(3-4절) 그리고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5절) 합니다. 창세 11,1-9의 바벨탑 이야기에서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4절)을 건설하던 사람들은 서로의 언어가 달라지자, 이해하지 못해 갈등을 빚고 결국 분열됩니다. 그러나 오늘 제1독서에서는 반대로, 듣는 사람들 모두가 각기 자신의 언어로 알아듣고 상호 일치하는 상황이 전개됩니다. 성령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 교회 공동체의 특징은 서로의 말을 잘 알아듣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상호 소통과 교감, 그로 인한 일치인 것입니다.

■ 성령과 그리스도의 몸

이처럼 성령은 서로 간의 차이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안에서의 일치를 이루는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제2독서에 등장하는 코린토 교회는 서로의 다름 때문에 위기를 겪던 공동체였고, 이러한 혼란의 상황에서 바오로는 그의 유명한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전망을 제시합니다.

바오로의 가르침에 의하면 성령은 3개의 기능을 합니다. 우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게 합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두 번째로 성령은 우리 각자의 소명을 실현하기 위한 고유하고 다른 선물을 주십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4-6절) 세 번째로 성령은 서로 다른 각자의 현실을 한 ‘몸’의 기능처럼 움직이게 합니다. 몸의 다른 부위들이 하나의 의도 안에서 통합적으로 움직이듯 성령에 의해 새로 창조된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 각자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같은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12,13) 즉 성령만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하나로 만드시고 분열과 경쟁, 반목을 막게 하는 힘인 것입니다.

교회의 탄생을 알리는 성령 강림 대축일의 본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성령에 대한 매우 신학적인 통찰들을 제공합니다. ① 성령은 그리스도의 새로운 ‘숨’(생명)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새 시대가 시작되었고 그 부활하신 분이 제자들에게 불어넣으신 ‘숨’으로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② 이러한 새 창조의 특징은 소통과 이해입니다.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우리라 하더라도 같은 언어처럼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③ 언어뿐 아니라 각자의 은사와 직분, 활동도 다르지만 교회 구성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일치하여 그분의 일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뤄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서로의 다름이나 차이가 불편함이나 갈등이 되면,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폭력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시선과 마음으로 상대의 다름을 바라볼 때 그것은 분명 ‘함께 함’이 주는 풍요와 축복입니다. 상선벌악으로 숨 막히는 삶을 강요하고, 기복(祈福)과 규제로 인간을 조련하며, 금기와 검열의 무거움으로 권위와 제도를 유지하는 곳…, 교회가 결코 그런 곳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교회 공동체 안에 스며있는 하느님 숨(생명)의 신비와 유기체적 일치, 서로의 삶을 빛나게 하는 연대를 성령의 힘으로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교회 본연의 임무이며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