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87) 그저 웃기만 했는데…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05-28 수정일 2019-05-28 발행일 2019-06-02 제 3147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예전에 어느 본당에서 사목을 할 때입니다. 그 해 사순 시기 동안 본당 신자들과 영성적으로 지내기 위해 노력했고, 사제관의 동료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직원들은 합심하여 본당 전례에 최선을 다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성주간을 잘 보냈고, 기쁜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그 수고로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주님 부활 대축일 직후, 사제관 식구들과 수녀님들 그리고 직원 분들 함께 1박2일 여정의 엠마오를 떠났습니다.

출발하는 날 아침부터 엠마오 여정 동안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서로가 나누었고, 모두가 배가 아플 정도로 실컷 웃었습니다. 준비한 차량 편으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 동안 차 안에서도 이야기꽃을 피웠고, 녹음이 피어나는 시골길을 달리는 도중에도,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려 차를 마실 때도, 이야기 소재는 무궁무진했습니다.

단연 재미있는 주제는 성주간 전례 중에 나를 비롯하여 신부님들이 작은 것에 실수한 것, 틀린 것, 빼 먹은 것 등이었고, 그 이야기할 때에는 모두가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엠마오 동안 걷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엠마오 프로그램 도중에 짧은 시간 배를 타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 같은데, 선실 안에서는 지역 관광 해설사가 주변 경관을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선실 밖으로 나가서 봄바람에 출렁이는 강을 보고, 금은빛 반짝이는 강물결을 보며 수다를 떨었고, 이런 포즈, 저런 포즈를 취하며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런데 얼핏 보니, 우리 일행 외에 연세 지긋하신 부부가 우리와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원장 수녀님께서는 그 부부와 잠깐 이야기를 하시더니, 이내 그분들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여기 두 분은 울산 ○○본당 신자신데, 여행 중이래요.”

그러자 우리는 박수로 환영을 했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웃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윽고 나루터에 도착한 후 배에서 내린 다음 그 부부와 헤어졌으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서 저녁을 먹고 정말 편안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 미사를 봉헌했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식탁에는 ‘생밤’이 가득한 봉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식사를 기다리며 직원들이 ‘생밤’을 먹기에 나는 물었습니다.

“간식으로 ‘생밤’도 샀어요? 와, 맛있겠다.”

그러면서 나는 ‘생밤’을 먹으려는데 원장 수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생밤’은 어제 만난 그 부부가 간식으로 주고 갔어요.”

“헐, 어제 그 부부님이 이렇게 많은 ‘생밤’을 주고 가셨어요?”

“그 부부는 어제 신부님, 수녀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즐겁고, 신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대요. 그래서 드릴 건 없고, 자신들도 지역 특산물로 산 ‘생밤’을 우리에게 주며, 좋은 여행하시라고 인사하며 가셨어요.”

나는 원장 수녀님으로부터 ‘생밤’의 출처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전날, 짧은 시간 배 위에서 신부님들, 수녀님들, 직원들 모두가 소풍 나온 아이들 마냥 재잘거리고, 포즈를 잡고 사진 찍으며, 그저 신나게 웃은 것 밖에 없었는데. 바로 그 모습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잔잔한 감동이 되었다니…!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 그 자체’인 듯 합니다. 그리고 함께 있는 이들이 때로는 아이처럼 마냥 웃고, 장난치고, 마음을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로,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으로 전해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저 웃으며 1박2일을 보낸 것뿐인데,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이 나누어 진 것을 보니, 엠마오 여정 동안 실컷 웃었던 내 자신이 스스로 대견하기만 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