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예수 성심 성월에 알아보는 성시간과 예수 성심 신심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9-05-28 수정일 2019-05-28 발행일 2019-06-02 제 314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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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 감수했던 예수 성심 묵상
겟세마니에서 기도 근거한 성시간
죄인들로 마음 아파한 예수 발현
성심 위로하는 신심 행위로 생겨
알라코크 수녀 환시 메시지 통해 성심 신심 공경 공식화 계기
17세기 후 회칙 반포하며 보급

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이 있는 6월을 예수 성심 성월로 지정하고 축일을 기념한다. 또 성시간과 기도회 등을 통해 성심의 신비를 묵상한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성경에 근거하고,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인 교회의 전통적 신심이다. 예수 성심 성월을 맞아 성시간의 의미를 살피고, 교회 역사 안에서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이 어떻게 확산되고 발전됐는지 알아본다.

죽음의 고통에서 고민하는 예수와 함께 지내며 기도하는 것이 성시간의 주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큰 고통을 받으셨던 예수 성심을 관상하고 묵상하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성시간이 궁금하다

프랑스 성모방문수녀회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St. Margarita-Maria Alacoque·1647~1690) 수녀는 1673년부터 1675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예수 성심의 환시를 체험했다. 그중 1674년 세 번째 환시 체험에서 당신의 성심을 열어 보이시고 죄인들의 냉담과 배은망덕을 탄식하시는 예수의 발현을 보게 된다.

이때 예수는 상처받은 성심을 위로하는 방법으로 첫 금요일 영성체와 매주 목요일 밤 중에 예수의 수난을 기억하며 예수와 괴로움을 같이 할 것을 가르치셨다. 이는 ‘첫 금요일 영성체’와 ‘성시간’이라는 두 개의 주요 신심 행위가 생겨난 중요한 계기가 됐다.

코라도 지아갱토의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성녀’(1765년).

알라코크 수녀는 환시 체험 후 당시 고해 사제였던 예수회 클로드 드 라 콜롱비에르 신부와 함께 성시간 신심을 활성화했다. 같은 예수회 사제였던 로베르 드브로스 신부가 단체를 창설하면서 신심 전파는 더욱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이후 비오 8세 교황(재위 1829~1830)이 1829년 성시간 신심 실천을 전대사와 함께 인준했다. 1933년 비오 11세 교황(재위 1922~1939)은 성시간에 참여한 자로서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고 교황 지향대로 기도하는 이에게 전대사를 허락하는 등 신심을 장려했다.

성시간은 마태오복음 26장 40절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겟세마니에서 번민과 고통 속에 기도하던 예수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고 했던 말씀이다.

알라코크 수녀에게 발현한 예수는 불꽃 가운데 있는 성심을 보이시며 상처받은 성심을 위로하는 것으로서, 즉 세상의 죄악을 배상하는 탁월한 방법으로 성시간을 지시하셨다.

그런 면에서 ‘죽음의 고통에서 고민하는 예수와 함께 지내며 기도하는 것’이 성시간의 주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핵심은 예수 성심께 바치는 공경과 보속이다.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큰 고통을 받으셨던 예수 성심을 관상하고 묵상하는 것이다.

이홍근 신부(대구대교구 원로사목자)는 「예수 성심 신심과 성시간」에서 “성시간은 우리 자신과 세상의 죄를 보상하고 그리스도의 상한 성심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희생을 곁들여 바치는 사랑과 배상의 기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사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시간을 통해 원한 것은 친히 사람들 마음을 향하여 말씀하며 형식적인 대답이나 태도가 아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한 응답을 듣는 것”이라고 밝힌다. 결국 성시간은 예수의 성심에 대한 단순한 경배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남은 수난에 대해 그분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우리 삶 안에서 기워 갚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지향한다.

일반적으로 성시간은 성체현시(聖體顯示)와 함께 예수 수난에 대한 묵상, 장엄 기도, ‘성 토마스의 성체찬미가’와 ‘예수 성심께 천하 만민을 바치는 기도’, 성체강복 등으로 이뤄진다. 공동체에서나 개인적으로 할 수 있고, 시간은 목요일이나 금요일 저녁 때가 권장된다.

이홍근 신부는 “성당에서나 가정에서나, 들에서나 일터에서나, 여행 중에는 기차나 배 등 어디에서나 되도록 조용한 마음으로 겟세마니 동산의 기도를 본받아 한 시간 동안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 좋다”고 책에서 조언한다.

#예수 성심 신심, 어떻게 발전됐나

▲성경, 그리고 교부들

그리스도의 마음에 공경을 드리는 근거는 신·구약성경과 교부들, 교황들의 가르침에서 볼 수 있다.

호세야, 이사야, 예레미야 등 구약의 예언자들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을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 혹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충실한 사랑으로 서술했다. 이는 신약에서 등장할 메시아의 희생적 사랑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이기도 했다.

교부들은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는 말씀을 해석하면서 예수 성심을 초자연 은총의 근원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옆구리를 찔려 피와 물이 흘러(요한 19,34 참조) 내린 것을 두고 교부들은 예수 성심을 초자연적인 은혜의 보고로 비유했다. 즉, 피와 물은 성체성사로 풀이하며 하와가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왔듯이 새 아담인 그리스도로부터 교회가 탄생했다고 했다.

예수 성심을 통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통찰했던 인물로는 성 베르나르도(1090~1153), 성녀 제르트루다(1256~1302), 성 알베르토(1200~1280), 성녀 가타리나(1347~1380) 등이 꼽힌다. 성 요한 에우데스(1601~1680)는 예수 성심 공경을 공적 예절로 발전시켰다.

▲교황들

예수 성심 공경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널리 보급된 계기는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에게 예수 성심의 메시지가 전해지면서였다. 이는 예수 성심 신심의 교회 공인 및 신심이 권장되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교회는 알라코크 수녀의 시복을 준비하면서 특히 예수 성심에 대한 계시 부분을 살폈고 이것이 믿을 만한 것임을 인정했다.

17세기 이후부터 교황들은 예수 성심 신심을 승인하고 널리 보급했다. 비오 6세 교황(재위 1775~1799)은 예수 성심 신심에 반발하던 얀센주의에 대적하기 위해 1794년 예수 성심 신심을 공적으로 옹호하는 교서를 반포했다. 그 후 비오 9세 교황(재위 1846~1878)은 1856년 성심 축일을 전 세계 교회 축일로 확산시켰다. 레오 13세 교황(재위 1878~1903)은 1899년 5월 전 인류를 예수 성심께 봉헌하는 내용의 회칙을 발표하고 6월 11일 예수성심께 전 인류를 봉헌했다. 성 비오 10세 교황(1903~1914)은 매년 이 봉헌을 갱신하도록 했다.

‘성심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1958)은 1956년 성심 축일이 보편교회 전체로 확대된 100주년을 기념해 회칙 「물을 기르리라」를 반포했다. 이 회칙은 이전의 가르침과는 달리, 예수 성심 공경의 교리적 근거와 기원을 신학적으로 제시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도 교황들의 예수 성심 공경에 대한 강조는 계속됐다. 성 요한 23세 교황(재위 1958~1963)은 예수 성심과 성체성사를 영성의 중심으로 삼았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은 회칙 「인간의 구원자」(1979)에서 구원의 원천인 하느님 사랑이 그리스도의 성심을 통해 나타나고 실현됨을 밝혔다. 또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1980)에서 “성심 신심은 현대인이 하느님 자비를 고백하는 가장 합당한 방편이며, 교회의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가장 탁월하고 필요한 길”이라고 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