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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주일]‘좋아요’에서 ‘아멘’으로-SNS 넘어 ‘인격적 관계’로 가는 법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05-28 수정일 2019-05-28 발행일 2019-06-02 제 314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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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먼 온라인 친구들… 당신의 인간관계는 안녕하신가요
SNS로 더 많이 소통하는 사람들
남과 비교하면서 고통·우울 느끼고 추상적 관계로 자기 고립 심화돼
“교회, 성찬 친교로 엮어진 네트워크”
인격과 인격 직접 만나 전례 거행 
만나서 친교 나눠야 ‘인격적 관계’ 

김 베드로(가명)씨는 얼마 전 지인과의 만남에서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친밀해진 지인은 김씨와의 대화 도중에도 틈틈이 휴대전화를 확인하곤 했다. 중요한 연락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글에 지인이 ‘좋아요’(SNS에서 관심을 표현하는 기능)를 눌렀다는 메시지를 받고는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김씨는 “바로 앞에 사람을 두고 SNS에서 그 사람의 소식을 찾는 행동에 어쩐지 무시당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IT기기의 발달로 현대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SNS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SNS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유용한 매체다. 그러나 의존하게 된다면, SNS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격적 관계를 해치는 독이 된다. SNS로 훼손된 인격적 관계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SNS에 빠진 세상

현대사회는 SNS의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해 발표한 ‘SNS 이용 추이 및 이용행태 분석’에 따르면 국내 SNS 이용률은 2011년 16.8%에서 2017년 45.8%로 늘었다. 또한 스마트폰을 이용한 SNS 이용량도 꾸준히 증가해 일평균 62분에 이른다.

이런 경향은 청소년들에게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94.6%가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를 사용하고, 82.4%가 SNS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단 통계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업무, 친교, 정보공유 등을 위해 SNS를 이용하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루 중 직접 만나 소통하는 사람보다 SNS로 접하는 사람이 더 많다.

SNS는 소통에 탁월하다. 기존에도 전화나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 기기를 통한 소통은 있었지만, SNS는 사람 대 사람의 양방향 소통이라기보다 여러 사람이 다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사람들은 SNS를 통해 정보를 얻고, 동시에 만들어 낸다. 다른 이들의 소식에 공감하면서 공감 받는다. 이 모든 일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기에 파급되는 효과도 상당하다.

■ 관계를 위협하는 SNS

SNS에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2일 홍보 주일을 맞아 발표한 담화를 통해 SNS를 비롯한 통신망에 대해 경고했다. 담화에서 교황은 “통신망은 다른 이들과의 만남을 증진하는 기회가 되지만, 반면에 우리를 옭아매는 거미줄처럼 우리의 자기 고립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SNS 중독’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SNS에서 채우려는 사람들은 ‘좋아요’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한다. ‘카페인(카카오톡·페이스북·인스타그램) 중독’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다.

SNS가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중독 때문만은 아니다. SNS는 자신과 불특정 다수를 비교하도록 부추기고,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미국 피츠버그 의과대학이 19~32세 성인 1800명을 대상으로 SNS 이용과 우울증 관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SNS 이용시간과 접속 횟수가 잦을수록 우울증 발병 위험이 높다는 조사가 나왔다.

무엇보다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소통방식은 무분별한 개인주의와 배척을 부르고, ‘나’와 ‘이웃’을 갈라놓는다. 관계를 위한 도구가 오히려 관계를 끊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또 SNS를 끄면 소통을 차단할 수 있듯이 인간관계도 기계처럼 끌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기계론적 인간관이 자리 잡게 된다.

■ 교회의 해법은 ‘인격적 만남’

교회는 SNS를 무조건 경계하고 멀리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교황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여러 교구나 교회 기관들 역시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SNS로 인한 관계의 단절을 극복하는 교회 해법은 바로 ‘인격적 관계’다.

라틴어로 페르소나(Persona)라고 부르는 ‘인격’은 원래 삼위일체 하느님의 ‘위격’에서 유래된 말이다. 교회는 “인간 하나하나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으므로, 존엄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며 “인간은 단순히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인격’”이라고 말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357항)

교회가 가르치는 ‘인격’은 사회가 말하는 인격과 차이가 있다. 사회적으로 생각하는 인격이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특정한 성격이나 경향을 말하는 것이라면, 교회가 말하는 인격은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그 자체다. 인격은 인간이 지닌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 즉 영혼과 몸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인간을 말한다.

교회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인 관계로 부름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이웃과 인격적 관계를 맺도록 요청하고 있다. 인격적 관계의 핵심은 사랑의 친교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전례는 인격과 인격이 직접 만나야 가능하다. 온라인 채팅으로 고해성사를 할 수 없고, TV미사 시청으로 성체성사를 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홍보 주일 담화에서 “교회는 그 자체로 성찬 친교로 엮어진 네트워크”라면서 “성찬 친교에서는 ‘좋아요’가 아니라 진리, ‘아멘’을 바탕으로 일치가 이루어진다”고 SNS와는 다른 ‘교회의 네트워크’를 설명한 바 있다.

■ 인격적 관계 맺기

그렇다면 인격이 단절되고 있는 사회 안에서 어떻게 인격적 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일단 사람과 만나라”고 조언한다. 인격적 관계 맺기의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행위가 실생활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는 것이다. 인격과 인격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인격을 세상에 온전하게 드러내는 ‘몸’이 서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매체상의 글자나 사진 등으로만 소통하는 SNS와 달리,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말로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 신부는 “인격체인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SNS로는 드러나지 않는 그 사람이 살아온 만큼의 역사성을 느낄 수 있고, 공감능력이 계발될 수 있다”면서 “만약 촛불시위가 인터넷상으로 ‘좋아요’만 누르는 것이었다면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격적으로 상대방을 만나기 위해 “상대방과 대화할 때는 휴대전화를 보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몸과 몸이 만났다하더라도 사무적이고 업무적인 관계만으로는 인격적 만남을 체득하기 어렵다. 성부, 성자, 성령이 친교를 이루듯, 인격적 만남은 ‘친교’를 통해 심화되기 때문이다.

인격주의와 생명주의를 전파하고 있는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원장 정재우 신부는 “인격적인 만남은 친교의 만남이기 때문에, 인격적인 만남의 회복을 위해서는 친교의 의미를 보존하면서 그 만남을 통해 서로 주고받는 기쁨을 맛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신부는 “이해관계 이전의 만남인 가족 안에서 입장의 차이, 서로의 다름 등을 경험하고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며 힘이 돼주는 인격적 만남을 강화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위원장 옥현진 주교는 홍보 주일을 맞아 제작한 유튜브 영상에서 “세상과의 소통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상기시키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 대화, 그 안의 진실성, 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 우리는 서로 잘 소통할 수 있으며, 그 마음을 나누는 도구는 역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