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걷는 만큼 보이는 길, 프랑스 길 / 송혜숙

송혜숙 (클라우디아·교구 성지위원회 디딤길팀)
입력일 2019-05-28 수정일 2019-05-29 발행일 2019-06-02 제 314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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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길 코스 중에서 손골성지에서 수원성지로 가는 길은 프랑스와 깊은 연관이 있다. 손골성지의 성 김 헨리코 신부님과 성 오 베드로 신부님, 수원성지의 데지레 폴리 신부님(한국이름 심응영), 모두 프랑스분이어서 나는 이 길을 혼자서 ‘프랑스 길’이라고 부른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양을 중심으로 사목을 시작하자, 외국신부님들이 안전하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손골성지는 서울 근교의 교우촌 중의 하나였다. 150년 전 조선의 분위기는 서양의 종교인에 대해 경계하고 혐오하는 시선이 가득했다. 손골은 서울과 가깝고 인적이 드문 후미진 곳이었으므로 외국 선교사들의 기숙사, 교육장소로 적격이었다.

지금도 손골성지에서 수원성지로 오는 산길은 만만하지 않는데, 그 당시는 더 험했다. 그때만 해도 광교산에는 호랑이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 산길을 오가며 낯선 외국어와 습관을 익혀가며 조선 백성들에게 하느님을 전파했다.

프랑스의 원조와 자신의 사재로 고딕식 성당과 소화초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한 수원성지의 폴리 신부님은 일제강점기의 국민들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은 교육에서 온다고 생각하여 교육에 힘을 쏟았다.

신앙의 전파기간은 길지 않았다. 성 김 헨리코 신부님은 신자들을 모두 피신시킨 후 홀로 포졸들에게 체포되시어 순교하셨고, 성 오 베드로 신부님은 천안에서 체포되어 순교하셨다. 조선에 온 지 채 1년이 안 된 때였다. 폴리 신부님도 6·25 전쟁 중에 공산군에게 체포돼 피살되었다.

‘떠나라, 그리고 돌아오지 마라 이것이 선교사의 길이다’라는 사명을 부여받고 프랑스를 출발한 프랑스 선교사들.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말 그대로 이 땅의 끝까지 이르는 여행을 했지만, 그 끝에서 그들을 기다린 것은 십자가였다.

손골성지에서 수원성지로 가는 산길을 걸으면 아릿하다. 그 당시 신부님들은 ‘지긋한 연세’가 아니라 ‘꽃보다 청춘 20대’였다. 낯선 나라, 조선의 추운 방에서 들리던 새소리에 얼마나 마음을 실었을까. 낯선 사람들의 침묵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 길은 그때의 시간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프랑스 신부님들에게 짧은 불어로 고마움을 전한다. ‘Merci beaucoup’(메르시 보꾸)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송혜숙 (클라우디아·교구 성지위원회 디딤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