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2019 한반도 평화나눔포럼 ‘평화의 문화 한반도의 길’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9-05-21 수정일 2019-05-21 발행일 2019-05-26 제 314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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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 대한 헌신은 교회의 사명”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가 주최하고 평화나눔연구소(소장 최진우 소장)가 주관하는 ‘2019 한반도 평화나눔포럼’이 5월 18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평화의 문화 한반도의 길’을 주제로 열렸다. 이번 포럼에는 특히 동유럽 지역 교회 지도자들이 참여해 화해와 치유에 대한 경험을 나눴다. 또 국내 전문가들과 함께 한반도에 평화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교회 역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모았다.

포럼 외에도 5월 20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파밀리아채플에서 ‘함께 평화를 꿈꾸다’를 주제로 특별대담이 진행됐다. 다음날인 21일에는 남북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남북출입국사무소, 도라산역 전망대 등을 방문하며 평화를 바라는 염원을 되새겼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5월 18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마련한 ‘2019 한반도 평화나눔포럼’ 중 요제프 클레멘스 주교가 ‘독일 교회가 걸어온 화해와 평화의 길’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번 포럼 주제는 제1회의 ‘화해와 치유’, 제2회의 ‘포용과 공생’, 제3회의 ‘갈등에서 평화로’로 구성됐다. 제1회의에서는 냉전의 해체와 다문화에 대한 도전을 앞서 경험한 국가의 교회 지도자들이 아픔과 상처를 넘어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간 체험 사례를 공유했다. ‘포용과 공생’ 회의에서는 한국 사회의 통합과 관련해 난민을 포함한 ‘유동인’(流動人) 문제와 불평등 문제를 짚어보고 일치를 위해서는 ‘환대’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오갔다. 마지막 회의에서는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의 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기조연설에서 “유럽 사회가 용서와 화해를 통한 평화의 길을 걸어가도록 예언자적 역할을 모범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유럽교회의 체험을 나눌 수 있어 영광”이라고 포럼 의미를 풀이했다. 이어 염 추기경은 슈만, 아데나워 등 유럽과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한 가톨릭 정치 지도자들을 소개하며 “우리 한반도에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참 평화를 위해 일하는 ‘참다운 가톨릭 정치 지도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 구스만 카리키리 부의장은 ‘만남, 평화, 그리고 화해의 문화’를 주제로 한 특별강연에서 ‘만남의 문화’와 ‘대화의 문화’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만남의 문화는 모든 인간이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며 평화적으로 공존하기 위한 기본권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카리키리 부의장은 이어 “평화에 대한 헌신은 교회의 사명”이라며 연민과 연대, 형제애에 대한 ‘교육’을 강조했다.

# 제1회의 ‘화해와 치유’

헝가리 에스테르곰-부다페스트대교구장 페테르 에르되 추기경은 1989년부터 지금까지 국가 체제 변화 이후 헝가리 가톨릭교회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에르되 추기경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의 평화적 교체는 교회에 더 큰 자유를 제공했지만 수많은 제도적 활동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주교단이 2006년 ‘화해의 문서’에 서명한 것을 비롯해 부다페스트에서 정기적으로 16개 언어로 봉헌하는 미사, 헝가리교회가 민족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언급했다. 에르되 추기경은 “중부 유럽 역사는 국가 간의 갈등, 불의, 쓰라린 기억들로 가득하다”면서 “그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민족들의 화해를 위해 일하라는 성소를 느낀다”고 밝혔다.

“우리는 용서하고 또 용서를 빕니다.” 전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차관 요제프 클레멘스 주교는 ‘독일 주교들에게 보내는 폴란드 주교단 메시지’에 적힌 이 구절을 강조했다. 독일교회가 걸어 온 화해와 평화의 길에 대해 발표한 클레멘스 주교는 “용서는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정치적 타협이나 경제적 협의로는 굳건하고 지속적인 평화에 도달할 수 없다”면서 “오로지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화해와 치유를 위한 ‘용서’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영상으로 화해를 위한 폴란드교회의 역할에 대해 발표한 폴란드 그니에즈노대교구장 보이첵 폴락 대주교는 폴란드가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화해한 3가지 사례를 발표했다. 폴락 대주교는 “1000년 역사의 폴란드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강조한 교회가 지닌 화해의 사명을 확신했다”면서 “폴란드교회가 착수한 화해작업에는 계산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는 주님의 부르심에 충실하며 언제나 싸워야 한다”면서 “사람의 마음을 열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화나눔연구소 최진우 소장(맨 왼쪽)이 5월 18일 열린 ‘2019 한반도 평화나눔포럼’에서 ‘포용과 공생’을 주제로 제2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제2회의 ‘포용과 공생’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 전영준 신부는 “한국교회는 유동인을 돕고 적극 환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동인’은 최근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 단어로, 이주민과 난민은 물론 관광객, 순례객, 외국인 유학생 등을 포함하는 넒은 의미의 단어다.

전 신부는 ‘이민과 난민을 환대하고 보호하며 증진하고 통합하라’는 프란치스코 교황 가르침 등을 설명하며 “최근 교황들은 전쟁과 박해로 인한 난민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 갖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에 대해 교회가 효율적으로 여론을 이끌어 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톨릭교회가 일부 이주 현상에 대해서는 적극 대처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유동인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프랑크 군터 레무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권한대행은 “평화의 문화는 난민을 우리 사회로 맞이하고 이들을 위한 해결책을 찾는 데 필수적”이라면서 “난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이해의 문화를 전파하는 데 노력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난민과 우리의 다른 점은 난민은 본국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잃었다는 점뿐이라고 부연했다.

남북관계 개선 방안에 대한 발표도 있었다. 중앙대학교 신광영 교수는 ‘집단적 무지’라는 용어를 사용해 사람들이 남북관계에 무관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집단적 무지 상태를 극복해 여러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5월 18일 열린 ‘2019 한반도 평화나눔포럼’에 참석한 염수정 추기경(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맨 오른쪽)를 비롯한 해외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 제3회의 ‘갈등에서 평화로’

10년 동안 어울림센터에서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해 온 어울림센터장 박 에밀리아나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북한은 ‘우리’입니까? 혹시 ‘남’은 아닐까요?”라는 질문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박 수녀는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아파하면서 ‘그들’이 ‘우리’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지낸 북한이탈주민의 사례를 익명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를 만난 곳이 엄마의 무덤이었던 18살 행복이, 북한에 두고 온 동생 걱정에 좋아하는 붕어빵도 제대로 먹지 못한 17살 향이 등 그들 안에 담긴 힘든 인생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면서 “서로 모르는 것들을 궁금해 하며 배워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신과 전문의 전우택 연세대학교 교수는 “남한이 얼마나 제대로 성찰하느냐가 향후 남북 관계를 회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여 년 전부터 북한과 통일에 대한 집단 정신병리를 연구해 온 그는 남북갈등을 이혼을 코앞에 둔 부부와 비교해 설명했다. 그는 극단적 갈등을 겪는 이들이 화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피해자이고, 같은 사물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었으며 상대도 나만큼 충분히 고통받고 있다는 3가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충남대학교 김학성 교수는 세력균형으로 인한 평화는 늘 불안하다고 지적하며, 전쟁을 치른 국가가 갈등을 온전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화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한에서 먼저 평화를 위한 실천이 진전될 필요가 있다”면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국내적 연합이 확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특별대담 - ‘함께 평화를 꿈꾸다’

“함께 미래 바라보며 평화 위해 뛰어들자”

독일 화해 사례 소개하며 ‘기도’ 강조

젊은이들 차원의 교류 필요성 제안

5월 20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파밀리아채플에서 ‘함께 평화를 꿈꾸다’를 주제로 진행된 특별대담. 왼쪽부터 한홍순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구스만 카리키리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 부의장, 리디세 마리아 고메스 망고 전 사피엔자대 교수.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특별대담은 평화를 마주하기 위한 우리의 역할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둘째 마당에 함께한 요제프 클레멘스 주교(전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차관)는 “반드시 그 날이 올 것”이라면서 “우리 같이 미래를 바라보고 평화를 위해 뛰어들자”고 당부했다. 클레멘스 주교는 1984~2003년 신앙교리성 장관 요셉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개인 비서를 지낸 바 있다.

그는 독일의 화해 사례를 소개하며 악을 선으로, 기도로써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핵은 완전히 협박용이라면서도,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독을 도와주는 걸 반대한 서독 사람은 없었다”면서 “북한을 돕는 것이 북한 정권 유지를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북한 정권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동맹을 맺을 수 있는 대상을 찾는 등의 정치적, 외교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젊은이들 차원의 교류를 강조하며 ‘자매결연’은 다른 지평이 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세계청년대회는 전 세계 젊은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서 “교회는 장기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특별대담 첫째 마당에 참여한 리디세 마리아 고메스 망고 전 사피엔자대 교수는 여성으로서 가정에서 평화의 문화에 기여하는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평화 교육은 가정 안에서 시작한다”면서 “엄마는 평화를 조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정이 평화를 이룬 사회의 모델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함께 기도하는 가정만이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같은 날 오전 11시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3층 회의실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에 대한 기대감이 감돌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까운 친구’라고 소개된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 구스만 카리키리 부의장은 “현재 공식적인 초청이나 방북을 대비하는 준비모임은 없지만 교황님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진전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님께서는 화해를 위해서는 언제든 기꺼이 일 하고 싶으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