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청양다락골 성지순례길에서

신천연(사비나) 명예기자
입력일 2019-05-21 수정일 2019-05-21 발행일 2019-05-26 제 314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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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법을 따를 것인가? 세상의 법을 따를 것인가?’ 자주 고민하고 흔들리는 나를 성지순례길에서 진솔하게 만난다.

청양다락골 십자가의 길을 오른다. 골짜기 각 처마다 서있는 둥그런 항아리가 참 묘한 감정을 쏟게 한다. 포졸들에게 쫓기고, 고문을 당하고, 처형되면서도 웃으면서 순교를 택할 수 있었던 건 커다란 항아리 속처럼 하느님의 보호 안에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숨은 차오르고 나뭇잎 밟는 소리만 사방에서 들린다. 길이 가파를수록, 숨이 턱까지 차오를수록 묵주를 잡은 손에 힘은 더 해진다. 우리의 목소리는 오롯이 울림의 기도가 된다. 돌아보면 인생길에서 그랬다. 세상사의 힘듦에 나를 지탱하기 어려울 때 기도는 더 짙었고 바라보는 시선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었다. 평온함속에서 만나는 하느님보다 고통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이 더 가깝게 느껴짐은 분명 신비이다. 순교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한분이신 하느님을 만났기에 그 믿음은 배가 되고 단단해짐까지 더해져 순교까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을 만난다. 제1줄 무덤! 그리고 제2줄 무덤, 제3 줄 무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주검의 흔적뿐이다. 두 팔을 벌리고 선다. 잠시 바람이라도 막아 드리자. 온기라도 채워 드리자. 하늘은 참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당신들이 긴 박해의 시간 속에서 만난 하느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내가 만난 하느님은 바로 지금 네가 믿는 하느님 바로 그 분이시지.”

150년 전 병인박해 때 순교하신 그 분들이 만났던 하느님과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하느님은 같다. 그분들의 믿음은 바로 나의 믿음이 되어야한다.

설익은 열매 한 개가 뚝 떨어지며 순간을 영원으로 사는 비결을 전해준다.

“하느님만을 꼭 잡고 살아야지. 그래야 주님께 가는 길을 잃지 않는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하느님 세상사에 자주 흔들리는 저를 붙들어 주소서. 제 시선이 세상을 향하지 않고 오롯이 당신께로만 향하게 해 주소서.”

문득 내가 처음 하느님을 만났을 때 설렘이 기억난다. 눈부시게 환하고 가슴이 콩닥거렸던 신비의 설렘이 이제야 생생이 다시 기억나기 시작한다.

■ 가톨릭신문 명예기자들이 삶과 신앙 속에서 얻은 묵상거리를 독자들과 나눕니다.

신천연(사비나)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