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과 소리 / 송혜숙

송혜숙rn(클라우디아·교구 성지위원회 디딤길팀)
입력일 2019-05-21 수정일 2019-05-21 발행일 2019-05-26 제 314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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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도보순례길은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길이 있다.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로 가는 길이 그 길이다. 완만한 외국의 도보 순례길에서는 만날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산길이다. 김대건 신부님이 성장한 곳, 사제 서품 후 사목활동을 했던 곳에서 사후 유해가 안장된 곳으로 가는 길, 오롯이 김대건 신부님의 삶의 경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이 길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을 옮겼다는 이민식 빈첸시오의 이야기, 김대건 신부님의 무덤에 관한 이야기, 삼덕고개에 신망애 기념비를 세운 어느 신자의 이야기, 점점이 흩어져 있는 교우촌 이야기.

그래서였을까.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로 가는 좁은 산길은 걸을 때마다 새롭다. 이민식 빈첸시오를 생각할 때도 있고, 김대건 신부님이 중국에서 활동했던 상해 진자샹(金家巷)성당을 생각하며 걸을 때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김대건 신부님 어머니 고 우르슬라를 생각하며 걸었던 날이 떠오른다. 믿음과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아들을 지지해주던 후원자였지만 외로웠던 어머니. 곁을 지키던 남편과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갈 때도 묵묵히 버텨야만 했던 어머니. 아들의 순교이후 더 많은 가난과 굴욕을 견뎌야했던 쓸쓸한 어머니.

그 슬픈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순례길은 녹록치 않다. 길은 가파르고 고갯마루는 경사가 급하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처럼 숨이 차오를 때마다 고개가 나온다. 이때의 세 개의 고개는 은유다. 고개 뒤에는 늘 쉼터가 있으므로 나이든 사람들이 쓰는 어투로 삶을 대입하고 싶어질 때쯤, 누군가가 ‘주 하느님 크시도다’를 부르자고 했다.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성가를 부르다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를 줄였다. 성가소리가 신비로웠다. 요즘 말로 ‘공기 반 소리 반’이었다. 가만히 더 들어보니 그 소리들은 산이 품어주고 있었다. 우리 목소리를 나무와 풀이 받쳐주고, 하늘과 숲이 에워싸고 있었다. 소리는 바람을 적시고 그 바람을 실은 소리는 어떤 어머니 무덤가로 부려놓고 있는 듯했다.

가끔 그 날 순례가 떠오른다. 내게서 떠올라 내 안에서 맴도는 생각들을 떨치고, 어떤 어머니를 향해 기도를 드렸던 순례길. 그 산 빛에 물들어서 푸르게 닮아가자고 했던 순례길.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송혜숙rn(클라우디아·교구 성지위원회 디딤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