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주님 보시니 좋았다] (5) 생태계 훼손 후 얻는 평화는 ‘참평화’ 아니다

최승혁 활동가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입력일 2019-05-14 수정일 2019-05-14 발행일 2019-05-19 제 314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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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보존된 생태계 보고 DMZ
평화 목적으로 도로·시설 건설
생명 파괴한다면 의미 없어

“생태계 보호를 위하여 앞을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쉽고 빠른 금전적 이익만을 얻으려고 할 때 그 누구도 생태계 보존에 참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찬미받으소서」 36항)

“평화와 정의, 그리고 피조물 보호는 서로 철저하게 연결된 주제입니다.” (「찬미받으소서」 92항)

태풍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 녹색연합 제공

남북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서로의 경계선을 넘을 때, 우리는 감동했고 평화는 곧 찾아올 것만 같았다. 실제로 총부리를 겨누던 70년 세월 동안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조치들이 짧은 시간 동안 이뤄졌다.

비무장지대를 울리던 대남·대북 방송이 멈췄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GP시범철거도 이뤄졌다.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유해발굴사업을 하기로 했고 경계선이 없어 ‘민감수역’이라 불리던 한강하구 지역에서 남북이 공동조사를 실시했다. 북측 지역의 경의선, 동해선 현대화를 위한 공동조사도 이뤄졌다.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분위기는 냉랭해졌지만 분명 우리는 평화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비무장지대 생태계는 어떨까. 남북의 평화가 그곳의 평화이기도 할까.

비무장지대 생태계의 가치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예가 그곳 생물종 수다. 국립생태원이 1974년 이후의 과거 자료를 분석하고 최근(2014~2017년) 현장조사를 통해 확인한 비무장지대 일원에 서식하는 야생생물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01종을 포함해 총 5929종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01종은 전체 멸종위기종 267종의 약 40%에 근접하는 수치다. 비무장지대 생태계가 야생생물에게 안전한 서식처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안전한 서식처가 깨지고 있다. 우리의 평화가 비무장지대 생태계에는 총과 칼이 됐다. 남북공동 유해발굴사업을 위한 도로가 비무장지대 한가운데 개설됐다. 생태계 훼손을 최소화한 임시도로가 아닌 과도하게 넓은 도로였다. 도로 연결 중 남북의 군인이 만나 악수하는 모습이 평화의 상징처럼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그 현장에선 수십, 수백 그루의 나무가 잘려 나갔다. 길은 남과 북을 연결했지만 비무장지대를 동과 서로 단절했다.

남북이 물리적으로 맞닿아 있는 비무장지대 일원은 남북협력특구의 장소로 항상 거론된다. 제2개성공단의 후보지로 경기도 파주 장단반도 일대가 이야기됐다. 장단반도는 남방한계선 바로 아래 위치한 생물다양성이 아주 풍부한 지역이다. 비무장지대 내부에 대규모 공원을 짓겠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비무장지대에 이같은 대규모 시설물이 들어오면 생태계 훼손, 파괴는 자명하다. 비무장지대는 우리의 분단과 아픔 위에 70년이라는 시간이 더해져 생명이 넘실대는 공간이 됐다. 평화와 번영이라는 이름으로 그곳을 파괴하는 일을 당장 멈춰야 한다.

비무장지대 생태계를 훼손해 쌓아 올린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비무장지대 생태계가 온전할 수 있어야, 그곳의 생명이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평화다.

최승혁 활동가 (녹색연합 자연생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