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해외 학술 심포지엄-주제발표

입력일 2019-05-07 수정일 2019-05-08 발행일 2019-05-12 제 314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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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가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에서 본격적으로 펼친 ‘적응주의 선교’는 일방적인 선포가 아닌 현지 생활문화를 먼저 이해하고, 나아가 문화적 감수성을 공유한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다. 토착 문화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복음 선포의 수단으로 삼고, 부정적인 요소들은 정화하는 적극적인 행동 양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적응주의는 현대 교회가 독려하는 ‘새로운 복음화’의 우수한 모델로서도 가치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해외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초기 근대 서구 지식인의 동아시아 인식과 지식체계의 형성에 대해, 서양선교사들이 남긴 서학서들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는 국내 신진 학자들이 각 주제발표자로 나섰다. 특히 이들은 이번 발표를 통해 문화적응주의-서양선교사의 동아시아학 성립 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의견 등을 제시했다.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이 4월 30일 이탈리아 로마 예수회 총원에서 연 해외 학술 심포지엄에 모인 발터 카스퍼 추기경(오른쪽에서 네 번째)과 교황청립 로마한인신학원장 정의철 신부(맨 오른쪽), 이백만 주교황청 한국대사(왼쪽에서 세 번째) 등 참석자들.

■ 최영균 신부(동복원 학술연구위원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적응주의의 탄생’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엘리트주의적 선교정책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회 그리스도교 복음화 적응 전략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서구에서 근대 정신문명의 흐름이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나아갔다면, 동아시아의 근대는 인간 중심에서 신 중심의 흐름으로 나아갔다. 또한 하비에르는 일본과 중국에 유신론의 씨앗을 심었다. 상업과 교역에 의한 자본주의 양식의 이식과 유신론의 정신문화는 동아시아의 옛 관습 등을 깨고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근세의 새벽을 열게 됐다.

서구와 달리 동아시아의 그리스도교가 여전히 희망적인 것은 동아시아 근대성 자체가 물질문화의 찬란한 발전과 더불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 신주현 교수 (연세대 외래교수)

‘리치 이후의 잠재적 전환점 : 알폰소 바뇨니의 한문서학서’

명청 시기 사상사적 사건의 하나로 천주교라는 유럽의 종교사상이 전래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예수회는 특히 해외 선교에 있어서 서구의 문화와 언어를 일방적으로 현지에 이식하는 방식을 고수하기보다는, 먼저 현지의 언어와 문화를 깊이 연구하는 가운데 천주교 사상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는 유럽의 종교사상을 중국의 문인사회가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리치 이후에도 중국에 파견된 선교사들과 문인 천주교 신자들 간에 사상적 대화를 가능하게 한 중심기반 역할을 했다. 특히 바뇨니와 서광계 두 인물이 남긴 저술에 대한 분석을 통해 ‘천주’ 용어 사용의 맥락에 있어서 1616년과 1627년이라는 시점이 적응주의의 성립과 적용 국면에서 작은 전환점으로 존재했음을 숙고해볼 수 있다.

■ 장혜진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예수회에 의한 중·근세 일본사회의 변용’

일본과 동아시아 문명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그 우수성을 체감했던 발리냐노가 선교지 문화에 대한 존중과 수용이라는 인식적 태도를 취했던 것도 적응주의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적응주의에 대한 논리는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 안에서 특정되어 사용되는 경향이 크며, 철저히 교회 내부적인 시점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순기능으로서의 적응주의는 선교지 문화의 존중과 순응의 논리를 말할 수 있겠다. 그 역기능은 일본 전통 사회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는 위협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일방적인 교회 내부의 시선이 전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선교의 접근 방식에 있어서 편의적이고 자기중심적 논리로서의 적응주의에 대해 비판적 성찰이 요구된다.

■ 황병기 교수 (대진대 연구교수)

‘줄리오 알레니의 보유론과 복음서 번역의 아시아적 영향’

예수회 선교사들이 남긴 한문서학서들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마테오 리치와 줄리오 알레니는 예수회 선교사로 적응주의의 견해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한문으로 번역한 상제와 리(理)의 개념은 동아시아 지식인에게는 이중적 기능을 하게 된다. 조선 성리학자들에게도 리(理)는 자연과 인간을 지배하는 원천적 원리나 이치가 아니라 실재하는 구체세계에 의존해 있는 속성일 뿐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지식인에게 특히 성리학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는 지식인에게는 이질적인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소개한 적응주의 사상은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문명융합의 한 전형으로 작용했고, 변화를 갈망하던 일부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문명개조의 희망으로 수용됐다.

■ 이숙희 교수 (아주대 특임교수)

‘18세기 한역서학서적이 조선민중에 미친 영향’

정약용은 한역서학서를 통해 이해한 유학의 천관과 인간관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했다.

영명한 인간 존재는 영명한 하늘과 직접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지닌다고 해석했다. 그의 해석은 이기론을 기반으로 한 성리학의 결정론적 인간관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정약용의 사상에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의 내용들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천주의 전지, 전능, 전선에 대해서는 희미하게 언급하지만, 강생과 구속, 신의 정의와 심판, 공심판과 사심판의 개념 등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정약용의 유학사상에 민권 개념이 강조되기는 했으나, 이를 근대적 의미의 평등사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또 그의 천관의 종교적 성격을 그리스도교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마땅한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 김선희 교수 (이화인문과학원)

‘지식과 기술의 승인 체계 변화’

동아시아에서 천문학, 수학, 지도 등은 특정한 시기에 이전 시대의 패러다임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론적 전환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오랜 세월 절충되고 복합되어 온 다층적인 해석사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서학의 지식과 정보들은 본래의 유럽적 맥락에서 분해되어 전통적으로 작동하던 동아시아의 지적 네트워크의 세부 요소로 수렴되어 세부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각론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서학은 세부에서 뛰어난 지식일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이념적 체계 자체를 전복시키거나 대체할 지식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어떤 강력한 서학의 옹호자라도 자신들의 체계를 전복시키는 수준까지 나아가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