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첫사랑 양평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9-05-07 수정일 2019-05-07 발행일 2019-05-12 제 3144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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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시린 기억이 가득한 첫사랑을 소개합니다. 1984년의 소대장 시절 양평입니다.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소대원 중에는 중학교 1년 선배도 있었으며 반 이상이 저와 동갑이거나 나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를 형이나 부모처럼 의지하며 잘 따랐습니다. 특히 우리 소대원들은 선봉소대라는 자부심이 남달랐습니다. 1중대 1소대로서 대대가 야외훈련을 나가면 제일 선두에서 첨병을 담당했습니다. 우리는 팀스피리트훈련, 공지합동훈련, 200㎞ 행군 등 수없는 훈련에서 선봉에 섰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소대원들은 각양각색의 개성도 함께 모아 놓은 듯싶었습니다. 나무만 주면 무엇이든 뚝딱 만드는 산사나이 만호, 부실한 재료로도 세상에서 가장 맛깔나는 매운탕을 끓여내던 창식, 원양어선을 타고 오대양을 누비던 얘기를 침 튀겨가며 해준 성열, TV를 시청하다 드라마보다 더 구슬프게 눈물을 찔끔거리던 달훈, 헬기 한 번 타고선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던 이들을 어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양평에서는 또 하나의 첫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두 명의 동기생과의 만남입니다. 저는 1중대 1소대장, S는 2중대 1소대장, Y는 3중대 3소대장으로 보직을 받았습니다. S는 하얀 얼굴에 머리숱이 적었고, 장난기가 심했지만 친구의 일이라면 열일 제쳐놓고 도와줬습니다. Y는 넉넉한 체격에 임기응변에 능했으며, 인상 한 번 쓰면 병사들이 벌벌 떨었습니다. 반면 저는 곱상한 얼굴에 어리숙해 보였지만 꼼꼼하고 철저했습니다.

비록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몇십 년을 함께 산 형제처럼 기쁨과 슬픔을 나눴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라고 했던가요. 장거리 행군 후에는 물집 잡힌 발바닥을 서로 바늘로 따주고 연고를 발라줬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섰죠. 소대원이 있었기에, 두 친구가 있었기에, 첫 군생활의 어려움을 굳건하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순(耳順)을 바라보게 된 지금,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에 주님 뜻으로 한 형제가 됐습니다. 하느님의 세 아들이 5월초 첫사랑 양평에서 만났습니다. 일찍 전역해 공기업에 입사한 S는 30대 후반 정신적으로 심하게 방황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Y는 어릴 적 세례를 받았으나 젊은 시절 냉담했습니다. 결혼 후 군 생활의 어려움이 닥치자 Y 또한 하느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도 40대 초반 필연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강산이 세 번 이상 변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지만, 가는 곳마다 첫사랑의 추억들이 곳곳에서 새록새록 올라왔습니다. 용문산 유격장, 고래산, 지평리, 지겹도록 걸었던 길 등. 가슴 설레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련히 떠오르는 또 하나의 첫사랑을 만나길 소망해 봅니다.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