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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당사자로서 가야 할 평화의 길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4-30 수정일 2019-04-30 발행일 2019-05-05 제 314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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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북러 정상회담을 열었다.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 발표는 없었지만,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안전보장을 위한 다자 간 틀로 6자 회담이 필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6자 회담이란 지난 2002년 소위 ‘제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부터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이 열었던 다자 간 회담이었다. 2005년 9월 19일 제4차 6자 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기본 방향을 합의하고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합의의 이행을 둘러싸고 6자회담은 교착됐으며, 결국 무산됐다.

물론 푸틴 대통령이 무산된 6자 회담을 다시 복원하자는 주장을 한 것은 아니다. 당시 6자 회담 공동 성명에서 러시아는 ‘동북아 다자안보 관련 워킹 그룹’의 의장국을 맡기로 돼 있었으며, 중국은 6자 회담 자체의 의장국이었다. 즉 푸틴 대통령의 주장은 북한, 중국, 러시아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주창하면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다. 따라서 북중러의 협력을 강화하는 다자 간 안보 틀로서의 6자 회담 주장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국가들 간에 이익의 상충 지점이 있다. 북중러 vs 미일의 구도가 동북아에서 나타난다면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가장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야말로 우리의 외교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북한과 미국의 입장 차를 좁히는 중재자의 위치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북핵 문제 해결 방식과 남북 협력 방식을 바탕으로 북한과 미국이 우리의 입장을 수용하게 만드는 당사자의 위치에서 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선제적·일방적 비핵화를 수용하도록 하고, 그 실행에 비례해 남북 협력의 진행을 추진한다면 국제 사회도 이를 반대할 명분은 없지 않을까? 그리고 북한의 안전보장을 위한 6자 회담과 같은 다자 틀을 가동할 수 있다면 북한도, 미국도 그리고 국제 사회도 이를 반대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지난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간의 교착 상태는 마치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길에 공정이란 없다. 그들이 자기네 길을 비뚤게 만들어 그 위를 걷는 자는 아무도 평화를 알지 못하는”(이사 59,8) 상황과도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루카 1,79)이라는 말씀을 믿고 당사자로서 평화를 만들어 가는 담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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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