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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종교 간 대화 통해 세계 평화 바란다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신부rn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9-04-30 수정일 2019-04-30 발행일 2019-05-05 제 314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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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3년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매스컴위원회 연례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개최지인 스리랑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시내 거리 곳곳에서 옷이 입혀진 불상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뜨이고, 간혹 어떤 곳에는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어서 이 나라에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스리랑카에서 가톨릭은 소수 종교에 속하지만 그래도 신학교가 있을 만큼 가톨릭의 역사가 깊다. 500년 전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이미 성당을 짓고 선교활동을 했던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름답게 기억된 스리랑카에서 이번 주님 부활 대축일에 호텔을 비롯한 성당을 대상으로 한 폭탄 테러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났다는 비보가 들려와 마음이 아프다. 가장 거룩하게 보내야 할 날이고 신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때에 발생한 이번 테러는 스리랑카에서 차별받는 소수집단인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겨냥한 공격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폭력과 차별, 위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수 십 건에 해당된다고 한다. 종교 간 분쟁과 갈등은 스리랑카에 국한하지 않고, 아시아 전역에서 종교 근본주의에 근간을 둔 정치 단체들의 세력 다툼으로 인해 종교적 소수 집단이 겪는 박해와 희생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 종교 간 대화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아시아 대륙은 지리, 언어, 문화, 인종적 다양성뿐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종교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리스도교를 비롯해, 불교, 유교, 도교, 힌두교, 이슬람 등 세계 대종교의 요람으로서 다원적 종교성을 보여준다. 이 같은 다양한 종교성으로 인해 아시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종교와 관련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 집단이 소수파인 이슬람 집단을,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는 이슬람 집단인 로힝야족을 박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에서는 정치인들이 강경 무슬림 노선을 취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종교의 정치화’가 종교의 분쟁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사례들이 애석하게도 일반화되고 있다.

이미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는 1974년 대만에서 열린 제1차 총회에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삼중의 대화’(Triple dialogue), 즉 지역 문화와의 대화, 타종교들과의 대화, 가난한 이들과의 대화라는 과업을 제시한 있다. 이 ‘삼중의 대화’에 하나의 요소가 될 만큼 타종교들과의 대화는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알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3월 말에 99%가 이슬람교 신자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를 방문하였다. 가톨릭 신자가 극소수인 모로코를 택한 이유는 지난 2월 UAE 방문에 이어 이슬람교와의 화합을 추구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이었다. 교황님은 종교 간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의 종교가 차별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의 7대 종단 협의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가 1986년 조직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종교 간 대화를 시도해오고 있다. 종교 간 협력과 연대를 통한 대화의 분위기는 한국 사회 안에 종교 간 평화로운 공존을 지속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 역시 몇 년 전부터 천주교·기독교·불교의 3대 종단 연대를 이루어 디지털 과의존 예방 및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타종교인과 정기적인 만남과 대화를 하다 보니 서로의 종교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참 좋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은 “종교 간 평화 없이 세계 평화 또한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종교 간 평화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이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상호 신뢰하고 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에서 이해를 증진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아시아 복음화의 주역인 한국천주교회가 아시아의 삼중대화, 특히 그중에서도 종교 간 대화를 구현하는데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헌신하고 투신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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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신부rn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