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③ 제1차 FABC 총회와 ‘삼중대화’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소장·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입력일 2019-04-23 수정일 2019-04-24 발행일 2019-04-28 제 314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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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대화, 하느님 나라 선포하는 복음화의 길”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아시아 주교들에게도 영향
1972년 FABC 공식 탄생
아시아 현실 안에서 선교 노력

아시아교회의 주교들은 1970년 마닐라에서 가진 ‘첫 만남’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될 것을 결의하고,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이하 FABC)를 설립했다. 2회에 이어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황경훈 박사가 전하는 FABC 설립의 뒷이야기와 아시아 복음화와 위한 삼중대화의 의미를 설명한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FABC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쇄신’과 ‘대화’ 정신은 아시아 주교들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성 요한 23세 교황의 뒤를 이어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공의회를 이끌었고, 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회칙 「인간발전」(1967)을 발표했다. 여기서 교황은 ‘평화의 다른 이름으로서의 발전’을 제시함으로써 ‘전쟁과 기아가 없는 상태’만이 평화가 아니라 ‘매일 실현되어야 할 진정한 인간발전으로서의 평화’를 연구하도록 아시아교회를 자극했다.

1970년 아시아 주교들이 마닐라에서 처음 만났을 당시, ‘교황 피습’이나 ‘김 추기경의 가라데’ 같은 오보 섞인 해프닝은 이들의 첫 대면을 가십거리로 쉽게 이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가벼운 분위기는 아시아의 현실이라는 무게 때문인지 본회의가 시작되자 사라지기 시작했다. 회의가 계속될수록 더 심각한 문제들이 그 들뜬 분위기를 대체해나갔다.

공의회가 끝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참가 주교들 대부분이 식민 통치의 뼈아픈 체험을 했으며, 독립과 해방이 주는 교회적 의미를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는 공통의 경험도 한몫 한 것이 분명했다. 공의회의 세상과의 ‘대화’ 정신은 당시 마닐라에 모인 주교들에게 아시아라는 삶의 자리를 기억하게 하고 이를 회의 자리로 소환하는 데에 주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비록 이 회의에서 ‘삼중대화’(triple dialogue)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최종 성명서에서 ‘아시아의 가난한 민중과 다양한 문화 및 종교 전통 간의 대화’를 강조함으로써 이미 그 씨가 뿌려진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필리핀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예수회 사제 아레발로(C. Arevalo)가 기초를 놓았다고 알려진 이 삼중대화는 몇 년 뒤 FABC 첫 총회에서 공식화되기에 이른다.

■ 성 바오로 6세 교황, FABC 공식 승인

아시아 주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만으로 FABC가 탄생했다고 본다면 그 설립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건너뛰는 셈이 된다. 1970년 주교들의 마닐라 회의가 열리기 4개월 전에 아시아 11개 나라 주교회의 의장들이 홍콩에서 만나 현재의 FABC와 비슷한 기구를 조직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참석한 타이완 주재 교황사절(Pro-nuncio) 에드워드 카시디(Edward Cassidy) 추기경은 주교들에게 ‘로마 교황청 꾸리아의 주요 인사들이 그 같은 기구의 설립을 심각하게 반대하고 있으니 즉각 중지하라’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내놨다. 김수환 추기경을 포함한 회의 참가자들은 놀랐지만 카시디 추기경이 전한 바티칸의 반응이 전혀 낯선 것만은 아니었다. 이미 1955년에 설립된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연합’(CELAM)을 교황청 일부에서는 여전히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교황청의 일부 인사들은 ‘해방신학의 산실’로 알려진 CELAM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고 그러한 마당에 아시아에 ‘또 하나의 CELAM’으로 여겨지는 기구가 생기는 것을 환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몇 개월 뒤 주교들이 마닐라에 모였을 때 동석했던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세르지오 피녜돌리(Sergio Pignedoli) 대주교는 김 추기경에게 자신은 아시아 주교들의 기구설립 계획에 찬성한다며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에 고무된 김 추기경은 설립 안건을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참석한 회의에 직접 상정했고 여러 의견이 나온 전체회의 끝자락에 FABC의 창립을 촉구하는 결의서가 채택됐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72년 8월말 김 추기경을 포함한 4명의 추기경이 로마로 가서 교황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2년 기한’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드디어 FABC는 아시아 주교들의 협의기구로 공식 탄생하게 됐다.

■ 제1차 FABC 총회와 삼중대화

아시아 주교들은 1974년 대만에서 ‘오늘의 아시아의 복음화’(Evangelization in Modern Day Asia)를 주제로 제1차 FABC 총회를 열었다. 많은 현안 가운데 ‘복음화’를 총회의 주제로 택한 이유는 이외로 간단했다. 그해 9월에 로마에서 ‘복음화에 관한 주교시노드’가 예정되어 있었고, 따라서 이 회의는 시노드에 아시아 주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일종의 준비회의였다고도 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그 이듬해 나온 교황권고 「현대의 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는 ‘선교헌장’이라 불릴 정도로 현대교회의 복음화와 관련해 기본원리와 지침을 제공하는 중요한 문헌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아시아 차원에서 이 문서는 FABC의 선교관과도 많은 부분에서 공명함으로써 보편교회와 아시아교회를 연결하는 다리 구실을 했다. 어쨌든 이 총회는 복음화를 주제로 다뤘다는 의미와 함께 그 뒤 45년을 이끌어온 FABC 신학의 기본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회의였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회의에서 주교들은 아시아의 가난한 민중과 다양한 문화 및 종교 전통과 지속적으로 대화해야 한다는 삼중대화를 제창했다. 1차 총회를 비롯해 그 뒤 여러 총회, 특히 5차 총회에서 “선교는 아시아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고 아시아의 상황에서는 삼중대화라는 독특한 양상을 띤다”고 주장함으로써 복음 선교를 삼중대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 공의회의 창조적 구현으로서 삼중대화

FABC의 여러 문헌은 다원성과 다원주의의 긍정성을 확인한다. “다양한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 집단으로 이루어진 아시아의 현실에서 평화와 조화는 합당한(legitimate) 다원주의에 대한 인정과 모든 집단에 대한 존중이 요구된다. 일치, 평화, 조화는 다양성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공의회가 타종교, 타문화를 그리스도의 ‘씨앗’이 뿌려진 정도로 이해했다면 삼중대화는 이미 그것이 아시아의 종교문화 안에서 발화되었으며 오히려 그것에서 교회가 배울 수 있다는 ‘상호복음화’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삼중대화는 ‘하느님 나라’라는 종말론적 신학의 전망 속에서, 그 구체적인 맥락에서 구현된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남아시아에서 경험하는 빈곤의 상황에서 삼중대화는 ‘교회가 남는 것만이 아니라 긴요한 것을 팔아서라도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복음정신으로 실현된다. 또 공산당 독재, 군사독재, 또 권위주의 정권 아래 고통당하는 민중이 살고 있는 인도차이나 대부분과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우에는 독재에 맞선 투쟁이야말로 삼중대화를 구현하는 길, 곧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복음화의 길인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곳에서는 ‘고독사’하는 노인들과 장애인들, 성소수자, 비정규직 청년 등 경제발전의 그늘 아래 가려진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품어내는 ‘총체적 인간발전’의 노력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공의회의 대화 정신이 구체적인 아시아의 맥락에서 실현된 복음화의 길이며 FABC에서는 이를 삼중대화로 불러오고 있다.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소장·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