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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길, ‘생태대’로의 전환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19-04-16 수정일 2019-04-16 발행일 2019-04-21 제 314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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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피조물은 축복받은 하느님 작품
인간-생태계 공존하는 ‘생태대’ 이뤄야
오늘날 일어나는 생태계 파괴 생물의 멸종 불러올만큼 강력
토마스 베리 신부 생태사상 고생대-중생대-신생대 지나 생명·지구 중심 ‘생태대’ 강조
인간과 자연 올바른 관계 맺는 생명 중심의 새로운 세계관 생태위기 극복 대안으로 제시

‘생태대’로의 전환을 주장한 베리 신부는 모든 생명체를 하느님의 신성함이 깃든 살아 있는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해 오늘날 생태위기의 상황을 극복하고 함께 살아갈 생명의 문화를 이룰 것을 촉구했다.

그동안 학계에서 부차적으로 다뤄지던 생태계는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생물종의 멸종 등 생태계 파괴를 몸으로 체감하는 시대를 맞으며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다. 생태계를 경제적 자본으로만 생각하고 이용한 결과, 오늘날과 같은 심각한 생태계 파괴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 학계의 목소리다. 그 중심에 토마스 베리 신부(예수고난회·1914~2009)가 있다. 문명사학자였던 토마스 베리 신부는 그리스도교를 포함해 일반 사상계에서도 생태사상을 가장 먼저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인류문명이 존립하려면 생태문명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마주한 생태계 전반의 위기를 극복하고 생명의 문화로 나아가는 것은 공동의 구원을 희망하며 부활을 살아가고자 하는 신앙인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다. 베리 신부는 생명의 문화를 소개함으로써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부활의 길에 동참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 멸종

베리 신부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생태적 파괴 중 생물종의 멸종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과학자들은 지구 역사에서 대규모 멸종이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생대는 2억4500만 년 전, 중생대는 6700만 년 전에 발생한 대규모의 멸종으로 끝났고 신생대에 들어섰다. 베리 신부는 생물종의 멸종을 초래하는 현대 인류의 힘은 지구 역사상 고생대를 끝내고 중생대를 시작한 힘이나, 중생대를 끝내고 신생대를 도입한 힘들과 비교될 수 있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이러한 주장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 인류는 역사적 전환기 정도가 아니라 생물학적이고 지질학적인 전환기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 가난한 이들의 절규

또 생태계가 파괴되면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도 언급된다.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든 환경 훼손의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며 “물고기 개체 수의 감소는 다른 생계 수단이 마땅치 않은 영세 어민들에게 특히 어려움을 주고, 수질 오염은 생수를 사 먹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48항)고 언급한다. 따라서 참된 생태론은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한다”(49항)고 호소한다.

■ 생태대(生態代, Ecozoic era)로의 전환

이에 대한 대안으로 베리 신부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생명 중심주의, 지구 중심주의로 옮겨감을 뜻하는 ‘생태대’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태대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의 연장선에 있는 지질학적 언어다. 인류가 자연세계와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적절한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류가 자연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한다면 더욱 진화된 상태로 나아감을 확신하기 때문에 현재 생태계의 상황을 위기만이 아니라 인류와 지구를 위한 기회로도 보고 있다. 이것을 실현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결정과 투신에 달려 있다고 본다. 특히 인간 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네 가지 사회 체제인 정치, 경제, 대학, 종교의 기본원리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의 가르침에 있어서는 자연세계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침내 베리 신부는 생태대를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에 주어진 위대한 과업이라고 선언한다.

■ 신성한 공동체

베리 신부는 생태대를 실현하기 위해서 ‘신성한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한다. 신성한 공동체는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공동체에서 유래하는데, 인간과 지구 전체가 하느님으로부터 축복받았음을 의미한다. 즉 창조된 모든 것은 하느님께 축복받았으며 하느님을 드러내는 신성함을 간직한다. 「찬미받으소서」에서 언급되는 ‘공동의 집’ 개념 역시 인간과 생태계가 함께 공존하는 지구를 뜻한다. 베리 신부는 모든 생명체를 하느님의 신성함이 깃든 살아 있는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해 오늘날 생태위기의 상황을 극복하고 함께 살아갈 생명의 문화를 이룰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연구위원 이재돈 신부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 오늘날의 부활”

인간 기술보다 자연 질서 우선하며 구체적 실천 노력 꾸준히 이어가야

“꿈이 있으면 지치지 않습니다. 생태문명이 우리 시대의 꿈이어야 합니다.”

최근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 등 심각해진 기후 변화를 경험하며 교회 안에서도 생태신학이 대두되고 있다. 이재돈 신부(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연구위원)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집중된 신학에, 생태계의 관계성도 더해진 것이 생태신학”이라고 밝혔다. 이어 “생태계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장이고 하느님의 작품이라는 넓은 우주론적인 차원에서 생태계도 인간과 형제, 자매”라고 토마스 베리 신부의 말을 빌려 설명했다.

비주류였던 생태신학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이 신부는 “생태신학을 얘기할 때 토마스 베리 신부를 빼놓을 수 없다”면서 “‘생태대’라는 표현을 만든 분”이라고 말했다. 생태대는 포유동물과 꽃이 있는 식물, 인간이 출현한 신생대에 이어 다가오는 희망적인 시대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 신부는 “생태대라는 희망적인 시대와 함께 과학 기술이 더 발전된 최첨단 기술문명이 지배하는 시대도 제시된다”고 밝혔다. 그는 “기술문명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지만 멀리 보면 지구를 파괴한다”며 “베리 신부는 세상의 모든 창조물을 주체로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인간문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결국 생태대로의 전환은 인간기술에 의지하는 것보다 지구와 자연의 질서를 더 우선에 두고 문명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생태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학적, 철학적 고민과 함께 구체적인 실천이 이어져야 한다. 이에 대해 이 신부는 “플라스틱 줄이기, 화학연료 줄이기 등 일상생활에서 실천이 매우 중요하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거대한 소비주의 앞에서 지치고 무너진다”고 밝혔다. 이어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실천할 수 있기 위해서는 꿈을 가져야한다”고 덧붙였다. 산업문명이 시작될 때 사람들은 산업혁명 실현을 위한 꿈을 가졌고 모두가 힘을 합해 결국 산업혁명을 이뤘다. 그 결과 생태계의 위기라는 심각한 후유증을 지니게 됐지만, 함께 꿈을 위해 노력했고 문명을 바꿨다는 점에서 희망을 얘기한다. 이 신부는 “꿈이 있으면 지속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생태문명이 우리시대의 꿈이어야 한다”며 “그 추진력으로 우리가 문명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신부는 “오늘날의 부활은 생태문명이라는 파스카를 향해 생태위기 상황을 잘 극복하는 데 있다”며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파스카적 구조 속에서 문명의 전환을 이뤄내자”고 당부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