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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의 재발견] 3.공소의 재발견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9-04-16 수정일 2019-04-16 발행일 2019-04-21 제 314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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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만의 신앙유산 살려내는 큰그림 필요
광주·원주·청주 등 일부 교구서 공소사목 프로그램 운영
예전과 다른 상황서 본당 ‘특별 구역반’으로 보는 시각도

공소사목과 관련해 오늘날 어느 정도는 회의적인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공소 살리기’가 과연 사목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공소의 사목 환경과 존재 의미 자체가 과거와는 천양지차로 변화된 지금, 공소사목의 의미가 있을까? 공소 공동체를 한국교회의 모태로 보면서 그 신앙 전통에서 소공동체의 원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그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가? 등 공소사목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 공소, 살려야 할까?

우선 공소 자체와 공소 신자들의 수가 급감했다. 그나마 남은 신자들은 평균 연령 70대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령화됐다. 이처럼 적은 수의 고령화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화된 사목 정책과 사목적 배려는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본당 수가 많아졌고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함에 따라서 공소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고, 공소들이 대부분 교통수단을 보유하고 있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공소가 속한 본당에서 마련되는 사목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공소는 다소 특별한 구역반일 뿐, 별도의 사목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공소사목부가 설치돼 있는 광주대교구 공소사목부 정규현 신부는 “공소에 단 한 사람의 신자라도 남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사목적 지원과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신부는 “현실적으로 모든 공소가 교우촌의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기능과 역할이 퇴색된 공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본당과 교구의 지원을 통해서 얼마든지 하느님 백성으로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대교구 등 일부 교구에서 별도의 공소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은 2009년 청주교구 공소 회장단 연수.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공소사목 정책과 방법론 모색 필요

공소 활성화의 원론적 당위성은 있지만, 사실상 각 교구에서 공소사목에 고유한 정책과 방법론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대개의 교구들이 공소사목을 별도로 실시하지는 않고 있다. 이는 즉, 현재 전국 각 교구 대부분의 공소는 각 본당에서 전적으로 관할하며, 대체로 본당 구역반 체제 하에서 접근성과 지역성의 예외성을 고려한 ‘특별한 구역반’의 의미 이상을 크게 넘어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공소들이 관할 본당에 속해 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 공소가 갖고 있는 기능과 역할은 더 이상 비중 있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일부 교구에서는 별도의 공소 지원 체제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7곳의 공소가 있는 원주교구는 ‘공소사목협의회’를 구성해 공소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복음화사목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청주교구는 선교사목국에서 공소사목을 관장하며 매년 공소회장 연수를 실시한다. 교구의 공소사목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에 촉발돼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공소사도회’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광주대교구에는 유일하게 공소사목부가 설치돼 있다. 무려 81개 공소가 있는 광주대교구는 공소사목에 대한 지원을 체계적으로 실시한다. 물론 공소들에 대한 사목은 공소가 속한 본당 사목자의 권한에 속하지만 전통적인 공소의 기능과 역할을 염두에 둔 다양한 지원을 한다. 여기에는 평신도 선교사의 양성과 파견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생활 공동체의 전망

교구의 사목활동 전체가 공소사목의 특성을 담고 있는 안동교구는 ‘농촌교구’로서의 정체성을 십분 고려해 교구의 농민사목과 연계된 공소사목의 전망을 일찍부터 피력해 왔다.

2004년 사목교서 ‘농촌의 복음화–공소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농촌의 복음화를’은 이 같은 관심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즉, 공소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농촌과 농민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해 11월 발표한 농민사목 특별교서 ‘농민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는 “농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농민들의 아픔에 동참하면서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현장 중심의 사목을 목표로 삼아 농민들 스스로 기쁨과 희망을 살고 전하는 사도가 되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교서는 특히 생활 공동체로서의 공소 공동체에 주목하고 공소사목이 미사 중심에서 벗어나 농민들의 삶과 연결돼야 함을 피력했다. 이러한 전망은 공소 공동체의 본래의 모습, 즉 신앙과 삶이 하나가 된 생활공동체로서의 모습과 맥락을 같이 한다. 광주대교구 공소사목부 정규현 신부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앙 공동체가 지역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지역민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어떤 빛을 비춰 주었는지, 농촌과 농민들의 현실에 신앙 공동체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 그리고 지역 사회와 주민들 안에서 신앙 공동체로서 어떤 전망을 제시해 주었는지도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 공소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전망

가장 시급하고 기본적인 과제는 변화된 사회와 사목 환경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공소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공소사목에 대한 전망을 확립하는 일로 보인다. 현대의 공소들에서 과거 교우촌 시대 공소의 기능과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신앙과 삶이 혼연일체를 이루고 지역 사회에 모범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드러냈던 공소 공동체의 복음적인 모습을 되살리는 것은 공소사목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광주대교구 사목국장 김정용 신부는 이와 관련해 “공소와 공소사목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며 “물론 이는 교구 전체의 사목 영역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과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소사목부 정규현 신부는 좀 더 구체적으로 “모든 공소들이 동일한 사목 환경과 활성도를 보이지는 않는다”며 “사목적인 필요에 따라서 기존의 공소를 본당 구역반으로 편제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고 공소 자체로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활성화를 지원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또 “어떤 경우든 공소가 복음적 공동체의 모습을 확고하게 정립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지역, 즉 교구에 따라 공소의 수와 특징, 환경이 상이하기 때문에 공소사목의 정책과 전망의 수립은 획일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따라서, 과거와는 다른 공소사목의 전망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사목방안들은 지역, 교구 및 본당들의 특성에 따라 수립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공소사목 현황을 볼 때, 사실상 공소사목은 전적으로 공소가 속한 관할 본당 사목자의 관심과 적극성 여부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 교구의 경우, 공소에 파견된 평신도 선교사의 역량과 투신 정도에 의해 좌우된다. 본당 사목자의 관심, 왕성한 평신도 선교사의 활동으로 눈에 띄게 활성화된 공소들의 사례가 전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사 안에서 공소 공동체가 전해 준 신앙의 귀한 유산을 간직하고 구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그리고 귀농 인구 등 새롭게 유입되는 공소 신자들에 대한 사목 활성화를 위해서는 교구, 나아가 한국교회 전체 차원의 공소사목에 대한 사목적 전망과 정책, 매뉴얼의 확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