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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 삶과 신앙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9-04-16 수정일 2021-02-16 발행일 2019-04-21 제 3141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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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하느님을 찬미” 마음에 새겨
자상하고 배려깊지만 자신에겐 엄격

4월 10일 부산교구장 임명 발표 직후, 교구 관리국장 김정렬 신부가 교구청 내 성당에서 교구 사제단을 대표해 신임 교구장 손삼석 주교에게 축하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박원희 기자

부산 주교좌남천성당에서 교구청으로 이동하는 짧은 길, 어느 틈엔가 손 주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저만치서 걸어오는 원로사제에게 성큼 다가가 악수를 하고 있었다. 곧 이어선 성당에서 나오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한다. 사실 손 주교 옆에 있는 이들은 늘 보는 모습이다. 손 주교는 누구나 격의 없이 대하고 누구에게든 먼저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목자로 정평이 나 있다.

■ 겸손한 사제로서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손 주교가 사제품을 받으면서 사목 모토로 정한 성경말씀이다. 당시 묵상하던 중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그 모습이 마음 깊이 박혔다고 한다. 주교로 임명되면서 ‘한 평생 하느님을 찬미 하리이다’(시편 63,5)를 성구로 정했다. 그런데 손 주교는 “솔직히 이 성구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엔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공동 번역 성서에선 이 구절이 ‘이 목숨 다하도록 당신을 찬양하며’라고 번역됐다. 손 주교는 교구장 임명 소식을 들은 후 “다시금 ‘목숨 바쳐’ ‘한 평생 하느님을 찬미’ 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돌본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살겠다는 뜻이었다.

손 주교는 독실한 신자였던 고(故) 손복남(베드로) 옹과 고(故) 정선(마르타) 여사 사이에서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외가는 사상 지역 공소로 사용되기도 할 정도로 집안 전체가 신앙으로 일치된 모습을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교리를 잘 알아듣고 학업 진도도 빠르게 소화했다. 부산 사상공소(현 사상본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성장하던 어린 시절, 주변 사람들은 그를 ‘당연히’ 사제가 될 성소자로 대했다. 손 주교 스스로도 자연스럽게 소신학교에 갔고 그러면 당연히 대신학교에 간다고 생각했다. 사제수품 전, 신학생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너무 갈등 없이 위기 없이 편하게(?)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손 주교는 “소설 「천국의 열쇠」의 주인공인 프랜시스 치점 신부와 같이 드러나지 않게, 본당에서 성실하고도 조용히, 신자들만을 위하면서 사는 신부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그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었다고 고백하며 제의를 수의로 입고 하느님 곁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제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하던 2006년 6월, 손삼석 주교(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하계해외문화체험단 발대식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제공

2010년 7월 9일 부산 주교좌남천성당에서 거행된 주교 서품식에서 첫 강복을 하고 있는 손 주교.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곰곰이 생각하고 꼼꼼히 일하는

사목 활동에 있어서는 항상 ‘곰곰이’ 생각하고 ‘꼼꼼히’ 일한다. 신학대학 교수 시절부터 손 주교에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안 건너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모든 일을 진중하게 했다. 이에 관해 손 주교는 “빨리 결정하면 실수가 생기지만,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듣고 숙고하다보면 지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반면 스스로에게는 너무 엄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숙고하고 절제하는 생활태도로 살아간다. 수품 후 본당 사목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신자들은 본당에서도 권위주의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기억한다. 예비신자들도 언제든 사제관을 방문해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도록 열린 모습으로 소통해왔다고 한다. 대학 총장 시절에는 전용차량과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자신의 낡은 승용차를 혼자 운전하며 다녔다. 주교가 되고 나서도 전임교구장 황철수 주교와 꼭 빼닮은 소박한 생활태도를 보여 왔다. 한 번은 두 주교가 행사 참가를 위해 소형차를 번갈아 몰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갔는데, 성직자 전용 주차장 입구에서 막아서는 이들 때문에 난감한 상황을 겪은 적도 있다고.

스무 살 때부터 40년 넘게 손 주교와 우정을 나눠 온 한승호(로베르토)씨는 “항상 자신을 먼저 내세우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매우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피정이나 행사 등에서 강의할 때도 손 주교는 신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늘 노력한다. 신자들은 “누구든 공감하며 마음을 열고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노래하며 긴장을 풀어주시는 모습도 일품”이라고도 입을 모은다. 이젠 ‘내 나이가 어때서’ 등의 대중가요가 손 주교의 애창곡이 됐을 정도다.

소탈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사제, 누구에게나 자상하고 배려 넘치는 목자, 자신에겐 누구보다 엄격한 주교. 이제 그는 부산교구장으로서 매일 한 걸음 더 신자들과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간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