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세상을 비추는 등불 돼 보자 / 박수화

박수화(마리아)시인
입력일 2019-04-16 수정일 2019-04-16 발행일 2019-04-21 제 3141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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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해 주님 부활의 영광이 큰 빛으로 오십니다. 그 큰 빛이 온 누리를 밝히고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에 다가가 감동의 전율로 전해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과 가정, 나라들마다 부활의 기쁨이 그렇게 행복한 평화의 백합꽃으로 활짝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언제나 모든 이들에게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한국천주교회사의 역사적인 성지인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떠올려 봅니다. 그 대화 속에서 우리 신앙인이 갖고 있는 이 시대의 소명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어느 주말, 명동성당에서 혼배미사를 봉헌하던 날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명동성당 축성 연도를 따서 이름을 지은 ‘1898광장’”이라고 설명하면서 정호승 시인의 ‘명동성당’ 시가 붙어 있는 유리문 쪽으로 지인들을 안내했습니다. 지하광장에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커피를 마셨습니다.

저는 지인들과 함께 명동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하고 인근 식당에서 칼국수를 사 먹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께 다 같이 연도를 바치고, 이후 저녁 무렵 찬바람 속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그 칼국수가 생각나 울컥할 때도 있습니다. 달보드레한 빵이나 유명한 크로켓도 명동성당을 둘러보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먹어보았던 것이 많은 기억에 남습니다.

꽃샘바람에 미세먼지가 걷히고, 모처럼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명동성당을 오르는 발자국 하나하나에도, 그 발자국을 이끄는 옆에 난 아름다운 꽃 돌길도 아름답습니다.

지난 2월 1898광장에서는 김 추기경님 추모사진전도 열렸습니다. 그곳에선 가끔 음악회나 공연이 열리고 전시회도 매주 열려 자주 찾아가 성화나 조각 등을 감상했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추모사진전은 특히나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는 성경·영성강의를 방송으로 시청하면서 많은 시간들을 뜻깊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줄이 삭아 끊어진 팔찌묵주들을 모아, 그 알들을 줄에 꿰어 멋진 묵주를 다시 만드는 것처럼 언제나 묵주기도는 희로애락이 가득한 인생의 질풍노도에서 저를 구해주곤 했습니다.

마음속에 일구는 영성은 사랑의 푸르른 텃밭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소소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봄밭에서 아지랑이와 들꽃을 만날 수 있는 신비로움입니다. 그것은 생활 속에 용솟음치는 샘물이고, 생기의 활력소입니다.

신앙심 가득한 마음은 비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풀 한 포기를 대면하는 기쁨이리라 생각합니다.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눈물도 지인들과 함께 미사 참례하고, 성가를 부르고, 하루에 조금씩 성경을 읽어 나가면서 그렇게 지내 왔습니다.

특히 맥이 빠지고 힘이 들 때 오솔길을 걸으며 묵주기도를 함께했습니다. 많이 부족한 시간들이었지만,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했던 나눔과 봉사활동들도 큰 힘이 됐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인 우리는 믿음의 끈을 꼭 붙잡은 사람들이라 참 다정한 것 같습니다. 희망이 가득 담긴 그 신앙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끈기 가득한 사람들이라, 우리의 삶이 더욱 활기차고 따뜻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서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돼 보고 싶습니다. 세파의 벼랑 끝 절망을 딛고, 모두모두 툭툭 털고 일어나 보려고 합니다. 한 줄기 생명의 구원의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묵상하는 지금 이 시간, 우리의 소명이 진실로 아름답고, 더욱 눈물겨운 것 같습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수화(마리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