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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부활, 죽음보다 더 강한 희망 / 오세일 신부

오세일 신부rn(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일 2019-04-16 수정일 2019-04-16 발행일 2019-04-21 제 3141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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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불안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말합니다. 기실 ‘불안’은 어떤 문제든 끊임없이 생각의 늪에 빠져서 마치 자기가 세계의 주인인 양 모든 걸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인의 강박과 망상, 수많은 정신병리 현상을 일으키지요. 하이데거는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고의 지평 끝자락에 ‘죽음’이 있다고 단언합니다. 맞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가며 끊임없이 생각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죽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수렁 같은 ‘삶의 질곡’에 빠져 있을 때 우리 안에 생명이 죽어감을 체험합니다! 성실히 노력했지만 인정과 보상이 따르지 않아 실망할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시 일어설 용기가 없을 때, 내 편에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느낄 때, 세상에서 의로운 이는 무시당하고 속물근성으로 얍삽한 이가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현실을 볼 때, 우리는 좌절과 어둠의 절망에 빠져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선불교에서는 대사대각(大死大覺), 크게 죽어야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가톨릭영성가들 역시 ‘죽음’의 실존적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만 부활의 현재성, 즉 재생(再生)을 체험하고 마치 번데기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새로운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삶의 현실 안에서 가난하고 부끄럽고 먼지 같은 자기를 대면하는 여정은 마치 죽음처럼 두렵고 회피하고 싶지만, 고통스럽더라도 그 길을 꿰뚫고 가야만 부활의 희망이 살아납니다. 기실, 예수님의 죽음은 결코 미화될 수 없는 ‘비참한 인간’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겟세마니에서의 외로움과 고뇌, 제자들의 배반, 세상 사람들의 변심과 거절, 조롱과 침 뱉음, 십자가의 죽음….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하느님의 시선 아래서 하느님의 꿈을 마음에 간절히 품지 못했다면, 그분마저도 홀로 그 죽음을 견뎌낼 수는 없으셨을 겁니다.

세상적인 인정과 속박의 사슬에서 죽고 하느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해방, 생명의 빛을 밝히는 ‘파스카 신비’는 우리의 생명이 애착이 아니라 참사랑으로 성장하며, 우리 삶의 끝자락이 죽음이 아니라 ‘희망’임을 알려줍니다. 죽음보다 강한 희망, 파스카의 여정은 개인 영혼과 인간관계뿐 아니라 공동체와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주도권’이 온전히 이뤄지는 그 모든 과정입니다.

기실 우리는 3·1운동 때 일제에 맞서 희생된 민족투사들, 전쟁과 독재를 끝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의인들과 무고한 이들의 희생과 죽음으로 인해 이 땅의 역사 안에 움터나는 민족의 파스카를 통해 자유와 희망의 지평을 체험합니다. 아직도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에 부역했던 이들이 조상들의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속죄하지 않고 자기(집안)의 부와 특권만을 지키려 역사를 왜곡하려 하고 또 촛불혁명 이후에도 공직사회의 혼탁한 무질서로 현기증이 날 지경이지만, ‘부활신앙’은 ‘하느님께서 역사의 종국에서 반드시 승리하신다’는 진리를 추구하는 싸움터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단지 세상적 성공과 승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희망은 내가 못 이룬 한과 욕망을 채우는 성공의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우리 삶에 가득 채우는 그 신비에 힘입는 길입니다! 부활신앙은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진리가 우리 삶의 자리, 역사의 한복판을 꿰뚫고 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진실된 마음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에서 이뤄집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영원한 생명의 지평에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꿈과 사랑’이 이뤄지도록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습니다.

매년 파스카의 여정과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이때,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합니다. 누가 ‘이제는 그만 잊어버리라’고 말합니까? 예수님의 죽음도, 광주의 죽음도, 그냥 무덤 안에 갇혀 버렸다면 죄악에서 인간을 해방시키시려는 하느님의 꿈도 역사에서 지워져 버렸을 것입니다.

304명의 죽음을 온 국민들이 지켜본 세월호 참사는 우리 역사의 심장에 ‘노란 글씨’로 아로새겨져 결코 죽어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980년 피 묻은 광주가 질곡에 빠진 우리 역사를 새롭게 비춰 왔듯이, 세월호 참사는 ‘돈을 사람보다 먼저 생각하고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십자나무의 빛을 비추며 우리 역사의 항로를 자기안위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더불어 삶을 돌보는 희망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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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신부rn(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