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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지향합니다 / 정민제

정민제(안드레아·우만재가노인지원서비스센터 센터장)
입력일 2019-04-16 수정일 2019-04-17 발행일 2019-04-21 제 314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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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00여 분의 저소득 독거노인의 어려움을 사회복지시스템으로 해결해드리는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그분들이 큰 어려움이 있을 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분들의 건강이 더 악화되어 고통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희 기관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어렵게 사시는 것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습니다.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살고자 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황이 됐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센터에서 모시는 어르신도 거의 대부분 부모님도, 조부모님도 가난하신 분들입니다. 고아로 태어나신 분도 많습니다. 저소득은 저학력으로 이어졌고, 남들보다 일찍 사회에 나와서 저임금으로 ‘비정규직’이나 ‘일당제’로 일을 하셨던 분들이십니다.

이분들은 남들보다 더 노력하셔도 ‘안정적인 삶’을 사시기에 모든 환경이 열악합니다. 보육시설에서 나오게 되면 지자체마다 100만 원에서 500만 원의 정착지원금이 나옵니다. ‘고아’란 ‘편견의 낙인’이 찍힌 상태에서 그 돈으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니 남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고, 정신적으로 우울감과 다른 정신질환에 취약한 상황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같은 사회복지사가 있지만, 그전에 예방적 차원으로 그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복지 선진국일수록 개인의 문제나 어려움을 지역사회 공동체의 문제로 생각하고 더 나아가 정부 차원에서 개개인의 문제나 어려움에 다 같이 동참합니다. 북유럽과 같은 복지 선진국에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국가에서 ‘장애인’에게 활동보조 교사를 파견합니다.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같이 가고, ‘비장애인’과 같은 학교를 다니며, 비장애인이 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배려해줍니다.

그런 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통계자체가 없습니다. 통계를 내는 것 자체가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랍고 부럽습니다. 우리도 개개인의 문제를 우리 공동체의 문제로 생각하길 기원합니다.

예수님 부활 이후 초기 교회공동체는 ‘모두 같이 나눴다’고 신부님께 배웠습니다. 우리도 개인의 문제가 개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역공동체, 국가, 우리 교회공동체의 문제라 생각해 그분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아픔을 치유해야 합니다.

개개인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가 됩니다. 우리의 몸이 국가공동체라고 한다면, 저는 발가락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머리가 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발가락이라도 암이 생기면 언젠가 뇌까지 전이돼 죽을 수 있습니다. 개개인이 서로 불행해진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국가란 공동체가 죽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지향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정민제(안드레아·우만재가노인지원서비스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