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화 ‘생일’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04-09 수정일 2019-04-09 발행일 2019-04-14 제 3140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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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가
세월호, 그 후…남은 이들의 이야기 
여전한 아픔과 고통 치유하는 여정 그려
“그날 수호도 올 텐데…. 오지 않을까?”

아들의 죽음에 여전히 터지는 울분을 진정할 수 없는 엄마 순남. 아들이 죽은 후에야 죽은 아들의 발이 자신만큼 컸음을 깨닫는 아빠 정일. 오빠와의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체험학습 중 바다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동생 예솔. 가족, 친구, 이웃…. 희생자를 둘러싼 수많은 이들의 아픔들.

그런 아픔 속에서 정일(설경구 분)이 순남(전도연 분)에게 세월호 참사로 죽은 아들 수호의 ‘생일’을 이야기했다.

물질지상주의와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한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세월호 참사. 그 참사로 희생자들은 떠났고, 우리는 남았다. 그리고 다섯 해가 흘렀다. 지난 4월 3일 개봉한 영화 ‘생일’은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은 여러 문화콘텐츠 중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자들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도, 독립영화도 아니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쟁점이나 이슈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수호의 가족들과 친구, 이웃들이 수호의 생일을 준비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 안에서 유가족을 비롯한 모든 남겨진 이들, 바로 우리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품고 있는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을 치유해가는 여정을 그려낸다.

영화 ‘생일’에서 수호의 생일은 실제로 진행돼온 ‘생일 모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따왔다. 시나리오나 연출에 과장이 없다. 그러나 담담한 그 이야기 속에 아픔과 슬픔이 잔잔히 스며든다. ‘생일’을 연출한 이종언 감독이 2015년 경기도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구상한 영화다. 허구인 영화에서 사실성과 진실성이 묻어난다. 이 감독은 “한 걸음 물러서서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또 한 가지 흘려버릴 수 없는 모습은 유가족을 둘러싼 이웃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또 기억하고 있는가. 영화 속 이웃들의 크고 작은 배려와 사랑 안에서 서로 치유되는 과정은 신자들에게도 묵상거리를 던져준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4년 방한 중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향한 사랑과 위로를 보였다. 또 2015년 3월 한국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앗 리미나) 때 한국 주교들과 만나 첫 마디에서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됐느냐”며 세월호를 기억한 바 있다.

수호의 죽음을 함께 아파하는 옆집 이웃과 친척, 수호의 생일을 준비하는 활동가, 밤늦게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엄마 순남의 통곡을 묵묵히 참아주는 모든 이웃들. 그리고 수호의 생일에 함께 참여한 이들. ‘생일’의 생일잔치에는 주인공인 수호는 없었지만, 이웃들의 사랑, 기억 안에서 가족들은 수호와 다시 만난다.

영화 생일 한 장면.NEW 제공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