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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대구 민화위 ‘화해와 일치를 위한 신앙인의 삶’ 특강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9-04-09 수정일 2019-06-21 발행일 2019-04-14 제 314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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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및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과  김영수 교수
서로 대등한 관계 인정하는데서 평화에 대한 감수성 싹 트게 돼
남과 북 서로 같은 격으로 두고 다름 인정하며 소통하는 노력 필요
마음의 통일 없이 평화통일 불가능
동질성 회복하고 이질성 극복해야
한반도 분단 이후, 한국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펼쳐왔다. 하지만 개개인의 경우, 북한동포들과 ‘화해’하고 ‘일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올바른 ‘평화통일’이란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 및 통일 문제에 관해 대표적인 전문가로 꼽히는 김영수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및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과)는 평화통일은 우선 남측과 북측 동포 개개인이 “서로를 동격으로 보고, 생각하는 바가 서로 좀 달라도 이해하고 인정하며 공존할 때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러한 공존은 “자발적인 합의에 의해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서로를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대구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이기수 신부)는 남과 북의 비적대적 공존, 나아가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노력의 하나로 특강을 열어 관심을 모았다. 4월 6일 대구 도원성당에서 진행한 김영수 교수 초청 특강은 ‘화해와 일치를 위한 신앙인의 삶’을 주제로 이어졌다. 이번 호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서는 김 교수가 제시한 ‘화해와 일치를 위한 신앙인의 삶’에 대해 지상 중계한다.

김 교수는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장과 서강대 부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대통령 표창, 통일부장관 표창, 국민훈장 석류장 등도 수상한 바 있다.

■ 평화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 우선 ‘화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화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싸움하던 것을 멈추고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앰’이다. 화해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화목하다고 답할 수 있다. 평화란 이렇게 ‘평온하고 화목하다’라는 의미다. 즉 평화를 위해선 우선 화해가 필요하다.

일치는 ‘비교되는 대상들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같거나 들어맞음’이라는 뜻이다. ‘이가 맞다’는 말이다. 서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서로 잘 맞추는 것이다. 일치의 기본은 동질성이지만 ‘이질적’이어도 어긋나지 않으면 가능하다. 조금 다르지만 서로 노력해서 이를 맞춰 가는 것이 바로 일치다.

전쟁 및 평화 연구의 선구자 퀸시 라이트(Quincy Wright·1890~1970·국제법학자)는 “인류가 역사를 기록한 이래, 전쟁이 없던 시간은 한 달이 채 안 된다”고 밝혔다. 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었던 때를 찾아보기란 어렵단 말이다. 라이트는 전쟁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만 평화는 사람이 노력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본인 저서 「전쟁연구」(A Study of War) 말미에서 말했다. 그만큼 전쟁은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지만, 그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평화를 바라거든 전쟁에 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조언도 있다. 군사 안보 등을 언급할 때 자주 인용되는 4세기 로마의 군사 전략가였던 베제티우스(Publius Flavius Vegetius Renatus)의 말이다. 이 또한 사람이 사는 동안 전쟁은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평화를 이루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불화와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학에서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많이 연구해왔다. 이러한 평화 연구는 반대로 갈등 연구로 이어진다.

■ 평화는 공존에 대한 자발적 합의다

평화는 공존에 대한 자발적 합의다. 특히 평화에 대한 감수성은 ‘너와 나와 대등하다, 격이 같다’라는 생각을 할 때부터 싹 튼다. 격이 같아도 내 생각과 너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화해할 기반을 마련하고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하다.

남과 북은 서로 공존하기는 한다. 하지만 적대적으로 살다보니 서로를 잘 모른다. 우리는 북한 사람들을 같은 격으로 보고 있는가? 예를 들어 남측은 ‘우리의 자본과 북한의 노동을 합치면 세계 5대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주 노동신문에선 ‘남쪽은 경제로, 우리는 정치로, 통일하면 통일 조국이 온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남북 모두 서로를 같은 격으로 두진 않는 모습이다.

평화통일은 북한 동포들을 동격으로 보고, 그들의 사고가 나와 좀 다르지만 ‘이해해’ 또는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공존할 때 첫발을 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인식은 하지 않은 채 손만 잡고 통일의 노래를 부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선 손만 놓으면 또 서로 각자가 된다. 억지로 평화를 갖게 하는 것은 강제와 전제주의다. 공존이 안 되어서 폭력으로 상대편을 강제로 굴복시키는 건 전쟁과 같이 폭력적 억압이다. 비적대적 공존에서 비적대적 협력까지 가야 서로 교류하고 오갈 수 있으며, 그러려면 좀 더 합의를 해야 한다.

남·북 통일은 동·서독의 통일보다 훨씬 어렵다. 민물과 바닷물이 합해지는 것 보다 물과 기름이 합해지는 것이 더 어려운 상황과 같다. 동·서독은 전쟁을 하진 않았지만, 남과 북은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단절됐고 적개심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서독에서는 교회가 정치적으로 교류하기 어려운 부분을 맡아 합심해 소통하는 노력이 있었다.

대구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4월 6일 대구 도원성당에서 진행한 특강에서 김영수 교수가 ‘화해와 일치를 위한 신앙인의 삶’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서로 알아야 한다

남과 북은 한 뿌리를 두고 있고 한 민족이지만 서로를 잘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은 6·25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실정에 이르렀다. 북측을 알아야 통일이 보인다.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남측에서 선수단과 응원단의 간식으로 ‘자유시간’이라는 이름의 초코바와 ‘오늘 뭐해’ ‘참 잘했어요’ 등이 적힌 포장의 사탕을 제공했다. 그런데 북측 지도부에서 “무슨 의도로 우리 선수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왜 ‘오늘은 뭐해’라고 묻고 ‘참 잘했어요’라고 평가하는가”라는 항의를 해왔다. 그래서 남과 북이 서로 만나니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설렌다는 설명과 함께 ‘심쿵’이라는 이름의 과자를 내놨다. 이렇게 같은 동포끼리 과자 이름을 갖고도 서로 의도가 무엇인지 따질 정도면 아직 화해하긴 참 멀다. 하지만 실제 22일간 같이 지내던 남북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서로 마음 깊이 가까워졌다. 우리가 70여 년간 멀어져 있었지만 노력하면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탈북자들은 남측 사람들이 아무리 도와주고 배려해도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고맙다’는 인사는 ‘수령’께만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다는 설명이다. 남측에서 입사한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탈북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북측에서는 지배인 동무가 매일 아침 직원들에게 인사하는데, 남측에서는 사장이 나에게 한 번도 인사를 하지 않아서 무시하는 것 같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또한 예를 들어 북측 일반인들은 대한민국이나 한국이라는 말은 잘 모르고 남측을 이남, 남조선, 아랫동네라고 부른다.

먼저 사람의 통일, 마음의 통일 없이는 평화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동질성을 회복하고 이질성을 극복해야 한다. 통일이라는 말과 함께 서로 다름의 공존인 ‘통이’(通異)라는 표현도 같이 쓰길 권한다. 서로 소통하는 것은 통일을 이루는 것과 같은 노력이다. 배우고 익혀 통일 일꾼을 만들어가야 한다. 함께 사는 삶을 준비하는 통일 상상력을 갖추고, 통합 대응 능력을 확보해야 분단 치유능력에 주력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평화는 두 가지 경우에 만들어졌다. 강한 사람이 착할 때, 또는 착한 사람이 강할 때다. 하지만 역사상 강한 사람이 착한 적은 별로 없었다.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 착한 척 한 사례가 더 많다. 오히려 착한 사람들이 강할 때 평화가 지켜진다. 신앙인과 같이 착한 이들이 힘을 모아 강해지면 평화통일을 위한 더 큰 힘을 얻지 않을까!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