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마리안나에게 / 강계순

강계순(크리스티나)rn시인
입력일 2019-04-09 수정일 2019-04-09 발행일 2019-04-14 제 314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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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어. 익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서로 온라인에서 기도를 해 주는 모임이었어. 기도해 주는 많은 사람들 중 ‘마리아’는 내게 매번 진심이 가득 담긴 기도를 해 줬어. 나는 마리아를 꼭 한 번 만나고 싶었어.

마침내 마리아의 연락처를 구했고 우리는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만나기로 했어. 그곳에서 마리아의 딸, ‘마리안나’ 너를 처음 보게 됐어. 유모차에 누워 환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마리안나는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돼 보였어.

그러다 알게 된 사실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어. 너는 6개월이 아니라, 태어난 지 6년 가까이 된 아이였어. 발달장애를 앓고 있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였어.

그 사실을 알고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그러자 마리아는 조용히 말하며 미소 지었어. “그냥 기도하면서 살아요. 평화롭게요.”

나는 네 엄마 마리아의 그 평온한 미소를 이해할 수 없었어.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 “왜죠?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 어린아이를…. 왜죠?”

예수님께서 길을 걸어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눈먼 이를 봤을 때 제자들이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해.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선 마리안나 네게도 당신의 일을 드러내시려고 그러신 걸까?

이전에도 장애를 안고 있는 친구들을 만난 적이 없던 건 아니었어. 그런데 마리안나, 그날 널 만나고 온 뒤로 나는 날 위해 하는 기도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어. 그때 내가 정말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도 그랬어.

때가 찼던 걸까. 그렇게 내게 너를 보내시면서 하느님께서는 내 입을 막으신 걸까. “이래도 네가 불행하냐? 이래도 네가 고통스러우냐? 이래도 죽고 싶으냐?” 하시면서 말이야.

한참이 지난 후 네가 대소변을 가리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어. 몇 발짝 걸음을 뗄 수 있게 됐다는 소식도 들었어. 시간은 그렇게 흘렀어.

별 이유는 없었어. 나는 이후 그 기도 모임에 더는 나가지 않게 됐어. 언젠가부터 네 엄마 마리아와의 연락도 뜸해졌어. 마리안나 네 소식을 듣는 빈도도 자연스레 낮아졌어.

어느 날이었어. 어떤 성지 마당을 돌면서 기도하는 대열에서 마리안나 너를 보았어. 마리아의 손을 잡고 뒤뚱뒤뚱 걷고 있는 너는 키도 전보다 조금 큰 것 같았어. 그날 네 모습은 정말이지 눈이 부셨어. 주변이 빛으로 환히 밝혀지는 것 같았어. 그게 내가 마리안나 널 본 마지막 모습이었어.

이후로 많은 세월이 흘렀어. 살다 보면 누구나 근심과 고통에 짓눌릴 때가 있지만, 많은 고통 속에서도 내가 언제나 평화 속에 머물 수 있는 이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마리아와 마리안나 너를 내게 보내 주시고, 내 죄와 어둠까지도 품어 주신 그분의 자비인 걸까.

마리안나. 내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깨우쳐 준 나의 작은 예수, 마리안나.

부디 하느님의 축복이 언제나 너의 곁에 머물기를, 너에게 주어진 삶이 언제나 즐겁고 그분의 은총과 자비로 충만하기를….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계순(크리스티나)rn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