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 본당 주보성인]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04-09 수정일 2019-04-10 발행일 2019-04-14 제 314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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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의 성흔 받은 신비가이자 활동가
권선2동본당의 주보
평생 빵·채소·물만 먹으며 지내
교리 알리는 설교로 대중에 유명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가 그린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제1대리구 권선2동본당의 주보성인인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인은 오상의 성흔을 받은 신비가이자 교회학자다.

성인은 1347년 시에나에서 한 염색업자의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발랄하고 상냥한 성격의 성인은 6세 때 자신의 생애를 보는 신비체험을 했다. 이후 성인은 평생 주님을 위해 생을 바치기로 결심했고, 혼기가 된 성인을 결혼시키려는 부모에 반대했다. 또 기도와 참회의 삶을 살며, 빵과 날채소, 물만을 섭취하는 금욕적인 생활을 시작해 임종 때까지 이 생활을 지속했다.

도미니코 3회원이 된 성인은 나병환자를 비롯해 절망적인 병을 앓는 환자들을 돌보며 생활했다. 또 흑사병으로 절망에 빠진 도시에서 주민들을 돕는데 헌신했고, 선고받은 죄수들을 찾아 돌봤으며, 평화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분쟁을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특히 성인은 환시 등을 통해 수많은 신비를 체험했다. 20세가 된 성인은 영적 체험으로 ‘그리스도와 신비의 결혼식’을 맺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이런 신비체험과 성인에 대한 지지자들이 열광하자 도미니코회에서 성인을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당시 복자 라이문도가 성인의 고해신부로 임명됐는데, 복자는 이내 성인의 영적인 친구가 됐을 뿐 아니라, 성인의 전기를 쓰기도 했다.

1375년 성인은 기도하던 중 오상의 성흔을 받았다. 성인이 오상을 받았을 때, 예수가 성인에게 나타나 “나는 네게 지식과 웅변의 은혜를 줄 것이니, 여러 나라를 다니며 위정자와 지도자들에게 내 소망을 전하라”고 명령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성인은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군주와 고위 성직자들을 방문해 대립과 갈등의 상황을 조율해나갔다. 특히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을 설득해 아비뇽에서 로마로 돌아오도록 했다.

성인은 신비가이자 활동가였지만, 또한 교회학자기도 했다. 성인은 33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 신학에 관한 정규 교육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신비체험을 통해 신학과 영성적 가르침을 망라한 영성을 형성했다. 성인은 자신의 신비체험을 엮어 「대화」라는 책을 펴냈고, 400여 통의 서한을 남겼다. 또 성인은 설교를 통해 신선하고 생동감 있게 교회의 가르침을 설명해 대중에게도 유명했을 뿐 아니라, 당대의 정치가와 고위 성직자들을 영적으로 지도하기도 했다. 이런 성인의 활동은 교회 영성사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비오 12세 교황은 성인을 이탈리아의 성인으로 선포했고,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학자로 선포했다. 성인은 유럽의 여섯 수호성인 중 한 명일 뿐 아니라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