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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내 뜻대로’ NO, ‘아버지 뜻대로’ OK! / 현재봉 신부

현재봉 신부rn(제2대리구 목감본당 주임)
입력일 2019-04-09 수정일 2019-04-09 발행일 2019-04-14 제 314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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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시기, ‘내 뜻대로의 삶’인지, ‘하느님 뜻대로의 삶’인지 묵상해본다. 무엇보다 사순의 끝자락에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께 맡깁니다”라는 예수님의 최후의 말씀이 자꾸 귓속을 맴돈다. 지천명의 나이에 과연 ‘주님 뜻대로’의 삶이었는지 반성해본다.

사제로서 23년차를 살고 있다. 신학교에서의 7년,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고 기도하고 운동하며 지냈다. 매 방학 때마다 나름 의미 있게 살아보려고 학원도 다니고, 연극, 뮤지컬 관람 등 문화체험도 하고, 실습 차 교구 내 여러 복지시설에서 봉사했고 타 본당에 파견돼 신부님들을 도우며 실습했으며, 용돈도 벌어서 부모님 수고도 덜었다.

정말이지 하루가 짧다고 느낄 만큼 살아왔다. 석사논문도 아닌 학부논문을 쓴다고 2년 반을 준비하기도 했다. 무엇이든 자기가 공들여 준비한 것만큼 결과가 주어진다고 믿었다. 이렇게 살아온 것은 아마도 집안 배경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내가 신학교를 지원할 무렵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아버지의 잇따른 사업실패와 목숨을 잃을 만큼의 큰 사고가 겹치면서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길거리에 내 앉게 됐고, 다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 가옥을 어머니 친구분 소개로 겨우 얻어 살게 됐다.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아 수제비, 국수 등 밀가루 음식으로 때우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학교를 간다는 것도 녹록하지 않았다. 솔직히 하루빨리 취업해서 부모님과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자격증도 있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이었다. 사제가 될지도 불확실한 미래에 내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사제수업의 여정을 떠난 것이다.

사제수업 중 큰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신학교에 입학해 첫 여름방학, 작은 본당 주일학교 학생들과 물놀이를 가서 안전 통제를 하던 중 학생들이 물놀이를 마치고 거의 빠져나갔을 때 그만 다리를 헛짚어 깊은 물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수차례 물을 먹은 후 의식까지 거의 잃었는데 기적적으로 안전선을 붙잡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군 제대 후 복학해서 공부하던 중 뜻하지 않은 추락사고로 오른손목이 크게 골절됐다. 거의 조각조각 난 뼈를 모자이크하듯 맞춘 상황이었고, 신경도 크게 손상돼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6개월간 몇 바가지의 눈물을 쏟아가며 재활에 성공해 회복됐다. 당시 장애상태로는 사제가 되기가 쉽지 않던 때, 가슴을 쓸어내린 사건이었다.

이렇듯 돌아보면 은총의 연속이었던 삶이었는데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맘이 달라지는 것이 인간이라고, 지금 그에 맞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기도생활, 희생, 봉사의 삶보다는 내 스케줄, 내 편의대로의 생활로 사제로서의 성덕에 한참 뒤처져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의 고난이 절정에 치닫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부르짖음을 떠올리며,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사제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본다. “아버지,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현재봉 신부rn(제2대리구 목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