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79) 참 좋은 지혜!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04-02 수정일 2019-04-02 발행일 2019-04-07 제 313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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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수도원 인사이동으로 외국에서 형제들 양성을 맡게 된 신부님 이야기입니다.

그 신부님은 갑작스레 외국 생활의 소임을 받게 되었기에, 외국으로 떠나는 날까지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2년이 넘고, 3년 되던 해에 나는 그 지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고, 그 신부님이 계신 수도원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몇 년 만에 그 신부님을 만난 날, 정말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출장 중에 그 수도원에서 며칠을 지내는데, 놀라운 것은 언어 걱정을 하셨던 그 신부님이 자연스럽게 외국 언어를 구사하고 계셨습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는 그 신부님이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신부님에게 내가 물었습니다.

“햇수로 3년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 어쩜 그렇게 언어를 잘 해요?”

그러자 그 신부님은 나를 놀라듯 쳐다보더니,

“무슨 그런 말을! 아직도 언어가 잘 안되어서 걱정이고 형제들에게 미안한데.”

“아뇨. 전혀 그렇지 않던데. 미사 잘 하시지, 강론 좋지, 외국 형제들과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지, 더 바랄 것이 뭐가 있어요.”

“에이, 신부님이 저를 좋게 봐서 그런 거지, 아직도 힘들어요.”

“정말,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이렇게 언어를 편안하게 하는 이유가 있어요?”

자상한 표정의 신부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정말이지 죽기 살기로 언어 공부를 했어요. 또한 언어라는 것이 원래는 어릴 때 하는 거라잖아요. 그런데 40살이 훨씬 넘어서 새롭게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어요. 아무리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외우고 했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자고 나면 다 까먹고. 그렇게 몇 달을 언어에만 매달리다 보니, 양성이고 뭐고,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어요.”

“아…. 우리 신부님, 정말 힘들게 공부하셨구나.”

“그런데 하루는 아침 묵상 중에 이런 기도를 했어요. ‘주님, 제발 언어 좀 되게 해 주세요. 이러다가 제가 미치겠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언어 공부가 잘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절규를 하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오늘의 나를 기뻐하라’는 울림이 전해지는 거예요.”

“정말 얼마나 간절했으면….”

“간절해서 그랬는지, 그 울림을 통해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내가 언어 공부에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니, 주변에 언어를 잘하는 사람들과 나를 항상 비교했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 언어에 대한 적응이 빨리빨리 안 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고, 그러다 보니 계속 스트레스만 쌓였던 거예요. 그런데 문득,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오늘, 어제 보다 단어 하나 더 알게 된 오늘, 어제 보다 언어에 경험이 더 생긴 오늘의 나를 생각하니 오늘, 지금 내 자신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기특한 거예요. 특히 늦은 나이에,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꾸준히 공부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무척이나 대견하고 소중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언어 공부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언어 공부를 즐기며, 여기 양성소 생활을 즐겁게 살게 되었고, 그게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또한 내가 언어가 부족하기에 형제들에게 의지하고, 그러다 보니 나의 노력하는 모습에 형제들 또한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고. 그런 하루, 하루가 쌓이니 언어가 늘더라고요. 기쁘게 사는 나를 보고 외국 형제들이 자연스럽게 자주 더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었더니, 그래서 언어가 계속 늘게 되더라고요.”

그 신부님의 말씀에서, 나 또한 ‘어제 보다 나은 나를 진심 기뻐하는 지혜’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