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유조차가 뒤집어졌어!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9-04-02 수정일 2019-04-02 발행일 2019-04-07 제 3139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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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의 어느 날, 십여 대의 항공기를 이끌고 비행을 해서 남한강변의 훈련장에 도착했습니다. 막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군수과장이 전화를 했습니다. “대대장님! 유조차가 뒤집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운전병과 선탑자는 어떻게 됐어”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네, 이상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럼 됐다. 내가 곧 갈게”라고 말하곤,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호하고 성호경을 올렸습니다.

즉시 헬기에 적재해 온 지프를 타고 유조차가 전복된 곳으로 향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하느님께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지혜의 은총을 주시길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고현장을 상상하면서 조치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한 가지 한 가지 메모해 나갔습니다. 사고지점으로 가는 30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습니다.

사고현장은 부대원들과 구경나온 사람들이 뒤섞여 어수선했습니다. 유조차는 논에 비스듬히 누워 기름을 쏟아내고, 장병들은 어찌할 줄 몰라 우왕좌왕했으며, 동네 사람들은 그 광경을 안타깝게 지켜봤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논 주인을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하고 원상복구 및 피해보상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곤 즉시 장병들을 집합시켜 업무분담을 실시했습니다. “군수과장은 누출된 유류를 수거할 드럼통을 구해 오고, 본부중대장은 병사들과 기름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논에 두둑을 만들고, 주임상사는 크레인차를 알아봐 줘. 만약 군용 크레인차가 여의치 않으면 민간 크레인차라도 불러!”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사고처리는 신속하게 진행됐습니다. 두둑을 만들어 더 이상 기름이 번지지 않도록 조치하고, 빈 드럼통에 유출된 기름을 담았으며, 크레인차를 요청해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조차를 견인했습니다. 대략 사고처리가 마무리될 무렵 사고원인을 곱씹어 봤습니다. 사고는 운전병이 새벽까지 출동 준비하느라 잠을 자지 못해 선탑자와 함께 졸다가 발생했습니다. 부대원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던 것이죠. 제 마음부터 느슨해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대형 항공기 사고 직후 대대장으로 취임해 1년 동안 사고처리 및 부대 정상화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아마도 제 인생에서 가장 절실하게 하느님을 찾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자,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되겠지!’라는 교만이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고개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하느님의 자비로 인명손실이 없었던 것이 큰 다행이었습니다.

위기는 내부적 교만이나 방심에서 생길 때가 많습니다. 유조차 사고를 통해 흐트러진 제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따끔한 예방주사를 맞은 것이죠. 인생의 고비마다 늘 저와 함께 계시며 지혜의 은총을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