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창공대성당 사목회장 육군항공학교 오정훈 교관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9-04-02 수정일 2019-04-03 발행일 2019-04-07 제 3139호 2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군인 시절도, 군무원인 지금도 “주님께 순명합니다”
현역시절 공소 활성화에 앞장
신분 달라진 지금도 신앙은 확고
신자 가정 하나 없던 공소 맡아
2년여 만에 탄탄한 기반 쌓아

육군항공학교 오정훈 교관이 자신이 가르친 교육생들이 첫 단독비행 기념으로 받은 패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충남 논산 육군항공학교 정비일반학 오정훈(알베르토·47) 교관은 신앙인으로 한결같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있다. 로마서 10장 12절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라는 말씀이다. 모든 이의 주님 앞에서는 누구에게도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데는 남녀, 신분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1995년 7월 1일 육군 소위로 임관해 육군 항공부대 헬기 조종사로 복무한 오정훈 교관은 정확히 만 21년간 군생활을 마치고 2016년 6월 30일 전역했다. 그리고 단 하루의 공백도 없이 바로 다음날부터 육군항공학교 교관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현역 때 전투복을 입고 장교 임관 때의 초심을 바로잡았다면 지금은 강의 전 거울을 보며 정장에 넥타이 매무새를 가지런히 하고 올바른 교육을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신분도 옷차림도 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전투복 속에 간직했던 신앙은 정장 속에 온전히 옮겨왔다. 뜨겁고 확신에 찬 신앙이다.

오 교관은 현역 장교에서 군무원으로 신분이 바뀌고 나서 느끼는 차이점에 대해 “장교 때는 부대의 리더로서 앞장서는 자세로 일을 했지만 군무원이 되고 보니 부대 내에서 나를 드러내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교육생들을 가르치는 교관의 업무 특성상 다른 사람들 눈에 띄거나 이야기 거리가 되는 언행을 하기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며 “현역 때와 달리 적극적으로 선교를 하는 데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오 교관은 현역 시절 거의 1년 단위로 23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군본당이 없는 작은 부대 공소회장을 맡아 공소를 활성화시키거나 공소조차 없는 부대에 사제를 초청하고 부대 곳곳에 감춰진 신자들은 찾아내 정기적인 미사를 개설하는 중추적 역할을 했다.

지금은 군무원이다 보니 활동에 알게 모르게 제약은 따른다. 그러나 외형적인 선교 방식만 달라졌을 뿐이다. 육군항공학교 창공대성당(공소)을 2년 9개월 사이에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은 주역이 바로 오 교관이다.

그는 “전역을 앞두고 제2의 직장을 알아보던 중 육군항공학교 교관 채용 공지가 났다는 지인 연락을 받고 생각지도 못하다가 지원했는데 합격했다”며 “처음 육군항공학교에 부임했을 당시 창공대성당에는 제 동기생인 직업군인 한 가정과 병사 몇 명만 주일미사를 드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창공대성당의 유일한 신자 가정도 한두 달 뒤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버리자 창공대성당을 관할하는 성요셉본당(전북 익산 육군부사관학교) 2016년 당시 주임 하철민 신부가 오 교관에게 “사목회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오 교관은 군무원 신분으로 군성당 사목회장을 맡을 용기를 선뜻 내기 어려웠지만 “네”라고 순명했다. 현역 때도 군종신부로부터 어려운 요청을 받을 때마다 “네”라고 십자가를 서슴없이 졌던 그였다.

오 교관이 창공대성당 사목회장을 맡자 그의 아내는 성모회장으로 봉사하기 시작했다. 주일미사 때마다 오 교관 아내가 병사들 간식을 준비하면 아들은 간식을 날랐다.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창공대성당에는 직업군인이 6가정까지 늘어났다. 군종교구 공소로서는 결코 적은 신자 수가 아니다. 오 교관이 신앙 공동체 확장에 ‘구심점’이 됐기에 주일 오후 6시30분에 봉헌되는 창공대성당 미사에 한 가정 한 가정씩 빈자리를 메워 이제는 탄탄한 공동체로 자리매김했다.

창공대성당을 활성화시킨 오 교관의 사례는 현역 군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 예비역과 군무원도 군사목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몫을 맡을 수 있고 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지금도 창공대성당 사목회장으로 일하는 오 교관은 현역 군인 신자이면서 부대 밖 자택 인근 민간본당에 나가는 이들을 군 신앙공동체로 끌어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대 밖에서 출퇴근 하는 군인 신자들 일부가 자녀 교육이나 이동 거리 문제로 군성당에 못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창공대성당 사목회는 정기적으로 성지순례나 친목모임을 열어 군성당 미사를 같이 못 드리는 군인 신자들과 신앙 안에서 교류하며 군인 신자라는 정체성과 일체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오 교관은 창공대성당에서 주님의 섭리를 다시금 발견했다.

“제가 원하던 진급을 하지 못해 속 쓰리고 실망도 했지만 하느님은 주지 않으신 것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창공대성당도 활성화시키셨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해서 훗날 강단에 서는 게 제 꿈이었는데 전역 후 육군항공학교에서 그 꿈을 이뤄주셨습니다. 제가 체험한 하느님을 다른 신자들도 체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유수일 주교(빨간 옷 어린이 뒤)와 오정훈 교관(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이 2018년 11월 28일 창공대성당 신자들의 견진성사와 첫 영성체 후 육군부사관학교 성요셉본당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오정훈 교관 제공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