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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물은 100℃에서 끓는다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4-02 수정일 2019-04-02 발행일 2019-04-07 제 313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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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채택에 실패한 후, 북한과 미국은 때로는 강경한, 때로는 유연한 입장을 표현하면서 향후 협상의 판 자체를 깨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공이 다시 우리에게 넘어온 것 같다.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에게 중재 역할을 당부했다”고 밝히면서 협상 재개를 위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시간으로 오는 4월 11일, 한미 정상회담 개최가 예정됐다고 발표하면서 그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고 있다. 하루 앞선 우리 시간으로 4월 11일은 평양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가 예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 회의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언급했던 비핵화 협상과 핵, 미사일 시험 유예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결정이 발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4월 11일은 대한민국의 효시라고 하는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날인 것이지, 북한과 미국에게는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할 수 없는 날이다. 필자는 바로 이점에서 날짜가 갖는 묘한 의미를 느낀다. 이 날짜의 의미를 협상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지만, 당사자가 아닌 듯 보이는 우리가 협상 성패의 실질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북미 협상이 교착돼 있으며, 북미 간에 협상의 진전을 위한 물밑 접촉도 진행되고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중재 역할은 작년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작년 북미 정상회담 직전 미국이 회담 연기 선언을 하자 남북 정상은 판문점에서 직접 만나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의견을 조율했다. 작년의 경우 우리의 역할은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한 의견 조율이었으며, 이를 통해 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과 미국 양쪽의 목표와 요구 사항이 지난 북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조건에서, 양쪽의 목표를 서로 수용하되 그 요구의 충족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중재자로서의 역할 비중이 훨씬 커졌으며, 조율해야 할 내용 또한 훨씬 구체적인 것이 됐다.

물은 100℃에서 끓는다. 100℃에 도달해야 비로소 물이라는 액체가 기체로 변화한다. 북미 관계의 변화 역시 액체가 기체로 변화하는 것에 비유할 정도의 변화다. 그렇다면 변화를 위한 끊임없는 가열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그것일 것이다. ‘말은 만사의 시작이고 모든 행동에는 계획이 앞선다. 마음은 변화의 뿌리’(집회 37,16-17)라는 말씀처럼 변화의 출발은 우리의 마음일 것이며, 변화를 위한 우리의 말과 행동 계획이 필요한 때다. 비록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우리의 마음이 굳건하다면 못할 일도 아닐 것이다. 4월 11일이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계기가 된 날로 기록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