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78) 또 다른 십자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03-26 수정일 2019-03-27 발행일 2019-03-31 제 313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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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4박5일 일정의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책임은 청소년 사도직을 위해 설립된 수도회의 수사 신부님이 맡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도중에 우연히 프로그램 책임을 맡은 신부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어쩜 그렇게 말씀을 재미있게 하셔요!”

그 신부님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에이, 아니에요.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잘 들어 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 일들이 우리 수도회 사도직이라 이것을 통해 행복함을 간직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신부님은 이 분야에서 완전히 전문가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아요.”

“아뇨, 저도 부지런히 배우고 또 공부해야 합니다. 이제는 정부에서 공식적인 자격증이 없으면 이런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예전처럼 신부라고 이런 프로그램을 할 수 있던 때는 지났거든요.”

“신부님이 국가 자격증도 있고, 이 분야 전문가라면 사람들 호응도가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 수도회 형제들 중에 이런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 세상의 유혹을 받아서 수도회를 나가더라고요. 그게 좀…, 안타까울 뿐이에요.”

“아! 그렇군요. 암튼 우리 신부님은 잘 하실 것 같아요.”

“저는 요즘, 과거 신학교 다닐 때에 같이 공부했던 형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혹시 어떤 마음을 말하는지?”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군대 갔다 오고, 수련 받고, 그리고 다시 신학교에 복학했어요. 그때 같이 신학교 다니던 우리 수도회 형들 중에 의사도 있었고, 유명한 프로그램 제작자도 있었고, 서울 최고의 명문대 출신도 있었어요. 그 당시에 제가 그 형들에게 자주 말했던 것이 ‘형들은 좋겠다. 일반 대학도 다녀보고, 직장도 다녀보고. 그리고 여자 친구도 사귀고, 술집도 가고, 디스코 장도 가 봤을 거고.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신학교 왔으니.’ 그러자 형들이 모두, ‘나는 이 길을 걸을 거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하루에도 몇 수십 번씩 말할 때가 있어. 의사, 프로그램 제작자, 명문대 출신…. 이런 것이 우리에게는 십자가야, 십자가. 이 십자가를 붙들고 사느라 힘들다, 힘들어.’ 나는 그 형들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세상 좋은 경험 다 해 보고, 무슨….’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신부가 되고 이제 20년 정도를 살다 보니 그때 그 형들이 말한 십자가가 뭔지 깨닫게 되더군요. 사실 우리 삶, 힘들고 지칠 때 특히 수도회랑, 혹은 수도회 형제들과 부딪힐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수도회를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는데, 저는 수사 신부라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없어서 수도원 나가면 굶어 죽을까봐 못 나갔거든요. 그런데 그 형들은 그런 배경이 있으니 얼마나 큰 유혹을 받았을까 싶더라고요. 그렇잖아요. ‘에이, 나가서 의사나 계속할까, 프로그램 제작자나 계속할까, 기업에 취직이나 할까’ 그런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때에는 마음의 갈등이 더 심했을 텐데…. 이제야 그때 형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은 배경을 가지고 부르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또 다른 십자가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나 또한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불러주신 하느님께 진심 어린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 다닐 때, 이 삶을 때려치울까 생각하며, 가방을 쌌던 때가 생각이 나면서, 오금마저 저려왔습니다. ‘아, 그때 나왔더라면….’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