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화로 만난 하느님] (7)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윤인복 교수 (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입력일 2019-03-26 수정일 2019-03-27 발행일 2019-03-31 제 3138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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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발 씻어 주며 “너희도 이렇게 하여라”
제자들 앞에 몸 낮춘 예수 겸손과 섬김의 모범 보여
최후 만찬서 빵 나눠주며 성찬례 기념하도록 해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과월절) 저녁에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식사하시다 갑자기 일어나셨다. 겉옷을 벗고는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 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다. 당시 집에 초대된 손님들의 발을 씻는 일은 그 집 하인들의 몫이었다. 제자들은 스승인 예수님이 그들의 발을 씻어 주니 얼떨결에 발을 내밀기는 했지만, 놀라지 않은 제자가 없었을 것이다.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최대의 애정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요한복음서에서만 짤막하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지만, 수많은 화가들이 예수님처럼 서로 섬겨야 한다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 발을 씻어 주는 사랑의 손

이탈리아 시에나 화파에 속하는 고딕미술 화가인 피에트로 로렌제티(Pietro Lorenzetti, 1280~1348)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하부 바실리카의 왼쪽 트란셉트(transcept, 교차랑)에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를 그렸다. 그중 예수께서 만찬을 위해 모인 제자들에게 직접 발을 씻어 주는 장면이다.

열두 제자들이 모여 있는 실내의 왼쪽 의자에 베드로가 앉아 있고, 예수께서 무릎을 꿇고 베드로부터 발을 씻어 주고 있다. 살짝 벗겨진 대머리에 덥수룩한 짧은 수염으로 묘사된 베드로는 스승이 시키는 대로 발을 내놓긴 했지만, 놀랍고 당황한 속마음이 얼굴에 드러난다.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베드로의 발치에 자리한 예수님의 모습은 제자를 온전히 섬기고 그의 발 위로 자신을 완전히 낮춘 겸손함을 보여주고 있다.

베드로가 한사코 사양해도 예수님은 허리춤에 흰 수건을 두르고 발을 씻어 준다. 베드로는 자신의 머리에 손을 올리면서, 자신의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요한 13,10)고 말씀하신다.

피에트로 로렌제티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예수님’, 1310~1319년경, 프레스코, 이탈리아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둥근 대야를 통해 스승 예수님과 제자 베드로는 서로의 관계가 연결된다. 대야의 둥근 형은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구원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대야 속의 씻을 물은 생명의 물인 셈이다. 예수께서 몸을 굽혀 손에서 가장 먼 발을 씻어 봉사한 것처럼, 베드로는 세상에 나가 겸손과 사랑으로 사람들의 발을 씻어 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오른쪽의 제자도 신발을 벗으려 한다. 제자들이 신발을 벗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선다는 의미다.

한편 예수께서 오른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따라가면 그림 오른쪽 끝 난간 틀에 팔을 걸치고 앉은 유다가 보인다.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상기시키는 인물이다. 유다의 머리에는 다른 제자들에게는 있는 후광도 보이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이미 이 가운데 누가 더러운 죄를 씻어내지 못했는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쪼개 나누어 준 생명의 빵

발을 씻은 다음 바로 이어진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도 유다와 베드로의 모습은 매우 특징적이다. 유다인의 전통적인 식사예절을 나타낸 말굽 형태(반원형)의 식탁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둘러앉아 있다. 왼편에 자리한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조금 크게 그려져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예수님을 가장 따르고 사랑한 제자 어린 요한과 머리를 산발한 안드레아가 스승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반면, 베드로는 식탁 오른쪽 끝자리에 앉아 있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자세가 아니라,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맨발의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자 마자 만찬이 시작됨을 알 수 있다.

작가미상, ‘최후의 만찬’, 1080년경, 프레스코, 이탈리아 카푸아 산 탄젤로 인 포르미스(Sant’ Angelo in Formis) 교회.

그리고 유다만이 오른팔을 길게 뻗어 커다란 그릇에 담긴 구운 양고기를 잡으려 한다. 양은 구약 희생제사에 중요했다. 1년 된 두 마리의 숫양을 날마다 아침과 저녁에 한 마리씩 하느님 제단 위에 바쳐야 했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바쳐야 하는 일일 번제물”(탈출 29,42)이다.

이러한 희생제물로서의 양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진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생명을 위해 희생하신다. 예수님은 누가 자신을 팔아넘길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제자들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쪼갠 빵은 예수님이 손으로 직접 나누어 각 제자 앞에 놓았다. 예수님은 스스로 죽음을 택해, 자신의 몸을 쪼개 식탁(성찬례)에 무한히 나눠지도록 내어 놓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주는 그림의 중앙 위의 아치 기둥 펜덴티브에는 펠리컨이 그려져 있다. 어미 펠리컨은 배고프다고 칭얼대며 싸우는 새끼들을 위해 자기 가슴을 쪼아 내 흐른 피로 새끼들을 살린다. 어미의 희생으로 자식들의 생명을 구한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피로 인간을 구원한다는 사랑의 의미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우리에게 나눠 줄, 무한한 사랑과 생명이 담긴 빵을 쪼갠 것이다.

예수님께 발이 씻겨 지고, 예수님의 영양분(예수님이신 살아 있는 빵)을 섭취한다는 것은 그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사랑하고, 그분처럼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닌가.

윤인복 교수 (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