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방향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9-03-26 수정일 2019-06-21 발행일 2019-03-31 제 313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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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협정 준수 의지와 국제사회 지지 뒷받침 돼야
확고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다양한 국제사례가 ‘길잡이’
북아일랜드 ‘성 금요일 협정’
모범 모델로 한반도 적용 가능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평양공동선언서에 서명한 뒤 펼쳐 보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으로 갈라진 남북한이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는 날, 그 평화의 결과로 통일을 이루는 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로 모른다.

지난 2월 27~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기 전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인들은 북미 두 정상이 내놓을 합의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컸던 기대와 달리 ‘협상 결렬’을 밝히고 두 정상은 발길을 돌렸다. 봄을 기다리며 설레던 마음에 매서운 꽃샘추위가 찾아온 것 같았다.

불안정한 한반도 분쟁상태를 종결지을 해법은 무엇일까 고민은 더 깊어진다. 시야를 넓혀 남북 간에 오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반추하고, 분쟁국 간에 맺어진 다양한 평화협정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살펴보는 일은 유용하면서도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논의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발표했다. 이 판문점선언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구체적 내용을 보면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언급했다.

판문점선언이 나오고 같은 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북한과 미국은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이 같은 남·북·미 세 나라 정상의 장밋빛 만남은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 합의가 담긴 ‘하노이선언’이 나올 수도 있다는 섣부른 전망을 불러왔다. 결론은 협상 결렬, 빈손이었다.

■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필수

문재인 정부 들어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면서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이 뜨거운 화두로 부상했다. 많은 이들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가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받아들인다.

학자들의 견해는 어떨까. 김덕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는 지난해 5월 30일 발표한 논문 ‘한반도 평화협정의 특수성과 주요 쟁점’에서 “전쟁(정전) 상태의 종료라고 하는 소극적인 측면만 본다면 평화협정 체결이 가장 고전적이고 통상적인 방식임에는 이론이 없지만 전쟁을 끝맺는 데는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평화협정 체결은 긴장과 불안, 과도기적 상태를 안정화시키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실효성이 확보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진단했다.

이근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종전선언’과 관련해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경과한 시간을 고려할 때 종전선언은 국제법적으로 단지 확인적, 선언적 효력을 가질 수도 있지만 종전선언이 갖는 정치적, 상징적 중요성은 가볍게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분쟁국 간 평화협정 체결 모범 사례 무엇이 있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맺어진 세계 각국 평화협정의 예는 무척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평화협정(1973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화협정(1995년), 코소보 평화협정(1999년), 이스라엘-요르단 평화협정(1994년) 등을 꼽을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 형태와 방식은 복잡다기하다. 한신대학교 평화와공공성센터 백장현(대건 안드레아) 초빙교수는 평화협정의 종류를 ‘지킬 의지가 있는 평화협정’과 ‘지킬 의지가 없는 평화협정’으로 분류했다. 지킬 의지가 없는 평화협정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미국의 압력과 중재로 수차례 평화협정을 맺고도 지킬 의지가 없기 때문에 매번 군사충돌을 반복한 예는 주지의 사실이다.

국제 관계 전문가들은 1998년 4월 10일 체결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성 금요일 협정)을 한반도에 적용할 수 있는 평화협정의 모범 모델로 평가한다. 영국에서 아일랜드 북부로 이주해 온 개신교도들이 본래 거주하던 가톨릭교도들을 탄압하고 차별하자 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은 20세기 들어 ‘아일랜드 공화국군’(IRA·Irish Republican Army)을 창설했다. 1960년대부터 30여 년에 걸쳐 테러, 게릴라전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다 1996년부터 분쟁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 협상이 개시돼 1998년 타결됐다. 아일랜드 공화국군은 2005년 9월 무장해제 완료를 선언했고 2007년 공동 자치정부가 출범했다.

북아일랜드 분쟁은 가톨릭과 개신교 간 종교 분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냉전 시대 이념 대결의 희생물인 한반도 분단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평화협정 당사자들의 협정 준수 의지가 강했고 이를 뒷받침할 국제사회의 조력이 있었다는 것은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길잡이가 될 수 있다.

◆ 인터뷰 /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 백장현 초빙교수

“한반도 종전선언은 사실상 평화협정”

‘공포의 균형’ 끝내는 중대한 의미

‘여론 지형의 변화’ 가져올 것

한신대학교 평화와공공성센터 백장현(대건 안드레아) 초빙교수는 한국전쟁 종전선언까지 나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이 “예상 외였지만 그렇다고 실패로만 볼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이기도 한 백 교수는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과 미국이 ‘같은 그라운드’에 서서 협상하는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종전선언과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합의가 나올 것으로 관측했지만 예상이 빗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협상 결렬 과정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포함해 북한의 모든 핵시설을 포기해야 대북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미국의 의중을 확인했고 미국도 오직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만 북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향후 대화 지속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북한 비핵화,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가 한꺼번에 ‘원샷’으로 될 수 없다는 것, 단계적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호 인식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백 교수는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았던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논의와 관련해서는 ‘종전선언은 상징적 의미만 지닐 뿐 실효성은 없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과는 다른 견해를 내놨다. 그는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정전협정은 미봉적이고 불완전한 데다 협정의 핵심 내용인 비무장지대(DMZ) 설치도 현실적으로 DMZ에 무장이 이뤄지고 군사 도발과 보복이 수없이 반복되며 ‘공포의 균형’을 가져왔다”며 “한반도에서 종전선언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전협정 상태로 불안한 평화를 유지한 채 65년을 넘게 살아 온 나라는 남북한이 유일한데 남북한이 소모적 경쟁과 제살 깎아먹기를 끝낸다는 의미에서도 종전선언은 꼭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관계에 대해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예를 보면 평화협정을 맺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광범위한 협상 과정이 필요한 만큼 한반도라는 특수상황에서 종전선언은 ‘사실상의 평화협정’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종전선언이 가져 올 효과로는 ‘여론 지형의 변화’를 꼽았다. “미국에서도 북한을 주적으로 보던 시각이 사라질 것이며 일본 우경화 세력도 실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백 교수는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니지만 당사국의 ‘지킬 의지’와 주변국의 지지 및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