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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어머니의 장례와 천우회의 연도 / 임동윤

임동윤(토마스 모어·시인)
입력일 2019-03-26 수정일 2019-03-26 발행일 2019-03-31 제 3138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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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은 축제처럼 다가온다. 그나마 지난겨울은 큰 추위도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미세먼지 속에서도 아픔이 눈 녹듯 사라지는 지금은 솜사탕 같은 봄날이다. 머지않아 벌과 나비 떼가 하늘을 날아 꽃봉오리에 앉는,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의 계절이 본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애틋한 그리움 속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훌쩍 한 달이 지나갔다. 생전 해드리지 못한 일들이 자꾸 생각난다. 못해 드린 일들이 이 봄날 저녁, 비가 돼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한껏 자라난 풀들이 한결 연둣빛으로 짙어질 것이다. 천주교 묘역에 누우신 아버지 옆자리의 어머니 봉분에도 이제 잔디가 파릇파릇해질 터다.

문득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내 생애에서 어머님의 장례를 가장 값지게 치를 수 있었던 연유를 말이다. 떠올려 보면 순전히 ‘천우회’ 덕이었다. ‘천우회’는 강원도 춘천고등학교 38회 졸업생들 가운데 하느님을 믿는 친구들이 매월 첫째 주 수요일 만나 친교를 나누는 모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천우회는 시종 나와 함께했다. 외아들이어서 홀로 상주 노릇을 해야 했던 내게 천우회는 큰 힘이 됐다.

천우회 친구들 중에는 교구 관련 일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교구 연령회를 이끄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이근엽(스테파노) 그 친구에겐 어머니가 돌아가시거든 장례를 꼭 부탁한다고 오랫동안 이야기했었다. 어머니 장례 때 이근엽 그 친구의 주례로 연도가 시작됐는데, 연옥에 계실 어머니를 위해 천우회 친구들이 함께 바치는 기도였다. 그만큼 의미가 깊었다. 메기고 받는 연도 소리가 빈소 안을 오래도록 맴돌았다.

한마음 한뜻으로, 이근엽 그 친구의 주례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친구들의 연도가 이어졌다. 그 연도는 근엄하면서도 웅장했다. 하루에 네 번씩이나 바쳤던 천우회 친구들의 연도는 어느 장례식에서도 볼 수 없었다. 나는 그 친구들이 있어 슬픔 속에서도 힘을 얻고, 삶을 지탱할 의지를 다졌다. 김호겸, 박세만, 박유헌, 박종소, 유남선, 유효현, 이계균, 이근엽, 이종담, 정도호…. 내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 준 천우회 친구들의 이 이름들을 나는 정말 오래 기억하고 싶다.

어느 누가 자기 일처럼 그렇게 해 줄까. 일심동체로 연도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정말 거룩해 보였다. ‘올바른 신앙은 의도하지 않는 충실함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우정도 의도하지 않은 충실함과 신실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닐까.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가 떠오른다. ‘주여,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얻게 하소서/ 주여,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써 참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봄은 연둣빛으로 타오르며 화사한 꽃들을 피워 내는 그야말로 약동의 계절이다. 그런데도 이 약동의 계절에 어둠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화사한 봄은 마음속까지 봄기운이 스며들어야 진짜 느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 아닐까.

약육강식의 거친 명제가 눈 녹듯 사라지는 이 화사한 계절, 봄. 모두가 굳은 믿음 안에서 알맞게 저마다의 봄을 누렸으면 한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동윤(토마스 모어·시인)